한인 신학자인 장재형목사(영어명: 장다윗, 데이비드 장)가 설립한 올리벳대학교의 대표자들과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최근 캘리포니아 안자(Anza) 지역 방송국 KOYT 97.1 FM이 주최한 연례 모금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행사 주제와 주요 활동
이번 행사는 ‘버블 & BBQ’를 주제로 열렸으며, 지역 주민들이 다수 참여해 활기를 더했습니다. KOYT 라디오 방송국의 프로그램 디렉터 에린 로스코(Erinne Roscoe)가 행사의 진행을 맡았으며, 라이브 음악 공연, 침묵 경매, 경품 추첨, 그리고 Island Fusion BBQ에서 제공하는 음식이 참석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지역사회와의 교류
올리벳대학교 측은 “이번 행사를 통해 지역의 주요 인사들, 커뮤니티 리더들, 안자 지역의 오랜 거주민과 새로 이사 온 주민들, 그리고 농업 분야 협력 가능성을 지닌 파트너들과 교류할 수 있어 뜻깊었다”고 밝혔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과거 올리벳대학교에서 열린 투어와 오픈 하우스 등 다양한 행사를 떠올리며 긍정적인 평가를 나눴습니다. 또한 올리벳대학교는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교직원들을 지역사회에 소개하며, 안자 지역의 새로운 이웃으로서 주민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했습니다.
지속적인 협력과 우정
올리벳대학교는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와 행사 참여를 통해 형성된 소중한 관계들에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안자 지역사회와 더욱 깊고 풍성한 협력과 교류를 이어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올리벳대학교의 역사와 비전
한편 올리벳대학교는 장재형 목사가 설립한 올리벳신학교(Olivet Theological College and Seminary)에서 시작하여 2004년 3월 3일 미국 정부에 정식 등록되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미국 교육 평가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자리잡았으며, 현재 조나단 박 박사가 제6대 총장으로 학교를 이끌고 있습니다.
장다윗(Olivet University 설립)목사의 설교가 지니는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성경을 단순한 지식의 집합으로 소비하지 않고 역사적 사건의 체온과 공동체의 호흡을 현재의 교회 안으로 되살린다는 데 있다.
그의 고린도전서 16장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흔히 “마지막 장”이라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 왔던 본문이 사실은 교회의 정체성과 실천을 가늠하는 핵심 장면임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방언과 예언의 질서, 부활이라는 거대한 신앙 고백을 지나, 재정 후원과 이동 계획, 사람들의 이름과 인사로 마무리되는 서신의 결말은 결코 우연적 배치가 아니다. 이는 복음이 추상적 개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약속과 일정, 신뢰와 물질, 존중과 눈물이 얽힌 현실의 언어로 구현되어야 함을 선포하는 선언에 가깝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에서 고린도전서 16장을 ‘신앙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현장’으로 읽도록 이끈다. 교리가 분명하다면 반드시 책임 있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고, 실천이 살아 있다면 진리의 방향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통합적 원리가 이 마지막 장에 응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6장의 서두를 여는 주제는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연보다. 여기서 연보는 즉흥적인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조직된 사랑의 리듬을 뜻한다. 바울이 요청한 것은 일회성 헌금이 아니라 지속적 책임이었다. 헬라어 표현이 암시하듯, 이는 충동적 시혜가 아니라 계획된 모금이며 공동체적 참여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다른 지역 교회들과 동일한 원칙 아래, 매주 첫날마다 각자의 형편에 따라 미리 준비하도록 안내한다. 이 지침에는 섬세한 목회적 통찰이 담겨 있다. 첫째, 갑작스러운 부담을 제거한다. 바울이 도착한 후 분위기에 휩쓸려 모금하는 방식은 감정을 소진시키고 공동체를 불필요한 압박에 빠뜨릴 수 있다. 둘째, 선한 습관을 형성한다. 사랑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반복된 훈련을 통해 성품으로 자리 잡는다. 셋째, 형편에 따른 참여라는 공정성이 있다. 동일한 액수를 강요하지 않되, 모두가 참여함으로써 한 몸의 책임을 나누게 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지점에서 교회의 재정이 단순한 운영 기술이 아니라 공동체를 성숙하게 하는 실천 신학의 장이라고 강조한다.
예루살렘 교회의 궁핍은 신약 전반에 흩어진 기록을 통해 실제적 상황이었음이 확인된다. 초대교회는 이상화된 공동체가 아니라, 기근과 가난, 사회적 불안 속에서 서로의 생존을 책임져야 했던 현실의 공동체였다. 그렇기에 바울이 놓은 연대의 다리는 더욱 의미가 선명해진다. 이방 교회가 예루살렘을 돕는 행위는 도덕적 우월의 표현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한 가족이 된 교회가 서로에게 진 사랑의 빚을 갚는 행위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영적 빚’은 죄책이 아니라 감사로 표현되는 연대의 윤리다. 장재형목사의 해설은 이 연대를 감상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는 교회가 교회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추상적 고백이 아니라 구체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루살렘의 눈물이 고린도의 지갑을 흔들고, 고린도의 풍요가 예루살렘의 생명을 잇는 끈이 된다. 교회는 이렇게 서로의 결핍을 통해 서로를 인식하는 법을 배운다.
이 본문을 오늘의 교회에 적용하면, 연보는 단순히 구제 헌금 항목으로 축소될 수 없다. 그것은 교회가 물질을 어떻게 다루는지, 곧 청지기 정신과 투명성, 사랑의 동기를 비추는 거울이다. 바울의 연보 처리 방식은 매우 신중하다. 그는 헌금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지 않고, 공동체가 인정한 이들을 세워 편지와 함께 파송한다. 필요하다면 자신도 동행할 수 있음을 말하지만, 그 역시 공동체적 절차 안에 둔다. 이는 재정이 영적 권위라는 명목으로 사유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강력한 장치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을 통해 현대 교회가 재정을 얼마나 투명하게 관리하며, 어떤 방식으로 신뢰를 쌓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헌금의 액수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랑과 진실의 질서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재정은 교회의 혈류와 같다. 흐름이 막히면 공동체 전체가 병들 수 있다. 유다의 비극이 상징하듯, 돈은 숫자를 넘어 인격을 드러내는 시험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바울의 조심스러운 절차는 재정을 선교의 연료이자 거룩의 훈련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라 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개념은 정통, 곧 오소독스의 감각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정통은 박물관에 전시된 교리가 아니라 삶을 살리는 진리의 좌표다. 교리가 분명할수록 사랑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반대로 사랑의 실천이 사라지면 교리는 공허한 문장으로 굳어진다. 고린도전서 16장은 이 두 축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 주는 매우 현실적인 신학 텍스트다. 바울은 부활을 선포한 직후 연보를 말한다. 이는 부활 신앙이 내세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 사랑을 실행할 이유임을 드러낸다. 부활은 미래의 약속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윤리다. 장재형목사는 이 연결을 통해 교회가 신학적 깊이를 추구하는 만큼 사회적 책임과 구체적 돌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후 바울은 연보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선교 여정을 공유한다.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로 향하려는 계획, 겨울을 보낼 가능성, 에베소에 머무는 이유, 그리고 “큰 문이 열렸으나 대적도 많다”는 고백은 사역이 낭만이 아니라 현실의 전투임을 보여 준다. 선교는 영감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머물 때와 떠날 때, 열리는 때와 닫히는 때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계획은 믿음의 반대가 아니라 믿음의 표현이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교회 운영의 균형 감각을 읽어 낸다. 열정만 남으면 쉽게 소진되고, 구조만 남으면 생명력이 사라진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신뢰하면서도 구체적인 일정과 가능성을 명확히 한다. 이는 오늘의 교회가 영적인 언어로 현실을 덮어 버리는 태도를 경계하게 만든다.
고린도전서 16장에는 유난히 많은 이름이 등장한다. 디모데, 아볼로, 스데바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편지의 끝을 채운다. 이는 교회가 제도 이전에 관계임을 보여 준다. 바울은 젊은 사역자 디모데가 두려움 없이 사역하도록 배려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는 세대 교체가 늘 긴장과 오해를 동반한다는 현실을 전제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을 통해 교회가 다음 세대를 어떻게 대하는지, 한 사람의 사명이 공동체의 언어와 태도에 의해 얼마나 좌우되는지를 묻는다. 존중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사역 생태계를 지탱하는 영적 기반이다. 또한 아볼로에 대한 언급은 특정 인물 의존의 위험을 성찰하게 한다. 교회가 원한다고 해서 사역자가 항상 즉시 응답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사람을 우상화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스데바나의 집에 대한 언급은 가정교회의 생생한 흔적을 보여 준다. 예배당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대, 한 가정의 헌신은 곧 교회의 공간이자 환대의 문이었다. 바울은 그들이 성도들을 섬기기로 결단했다고 말하며, 그런 이들에게 순복하고 존중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섬김이 단순한 봉사를 넘어 공동체를 살리는 영적 직분임을 보여 준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을 오늘의 가정과 일상으로 확장한다. 교회는 주일 예배당 안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식탁과 거실, 직장과 거리에서 관계의 방식으로 구현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된다.
편지의 마지막 권면은 간결하면서도 단단하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고 강건하되,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라는 요청이다. 강건함과 사랑은 분리될 수 없다. 강건함이 사랑을 잃으면 폭력이 되고, 사랑이 강건함을 잃으면 감상으로 흐른다. 장재형목사는 이 문장을 교회의 윤리적 나침반으로 제시한다. 깨어 있음은 내적 경건을 넘어 현실의 문제 앞에서 책임 있게 대응하는 태도다. 사랑으로 행하라는 명령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과 배분, 의사결정의 동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6장은 교회의 운영 지침처럼 보이면서도, 그 깊은 층위에서는 교회의 영혼을 다루는 본문이 된다.
결국 장재형목사가 이 장에서 길어 올리는 핵심은 분명하다. 교회는 사랑을 말로 증명하지 않는다. 교회는 사랑을 실행하고 지속함으로써 복음이 현실에서 작동함을 보여 준다. 연보는 공동체적 책임으로, 재정의 투명성은 신뢰의 구조로, 사람에 대한 존중은 미래를 살리는 배려로 나타난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라”는 명령은 신앙을 삶의 문법으로 번역하는 열쇠다. 그리고 마라나타의 소망은 교회가 지금 여기에서 사랑을 늦추지 않도록 붙드는 마지막 긴장이다. 이 본문은 오늘의 교회가 어디서 무너지고, 어디서 다시 세워져야 하는지를 묻는 깊은 영적 점검표가 된다. 사랑이 살아 있는 교회만이 진리를 진리답게 지키고, 사람을 사람답게 존중하며, 세상을 향해 복음을 복음답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된 교회의 지도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언제나 똑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직함이나 카리스마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의 길, 곧 삶으로 복음을 증언하는 길이다. 복음은 영웅담보다도 이름 없이 헌신한 제자들의 땀과 눈물을 타고 시대를 건너왔다. 그래서 리더십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이며, 리더를 세운다는 말은 곧 주님의 제자를 빚어 간다는 뜻이다. 이 관점에서 누가복음 9장은 제자도의 심장을 보여준다.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한 사람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대답은 가난 예찬이 아니라 소유에 묶이지 않는 자유의 선언이다. 내일의 안전망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자유, 가진 것에 붙잡히지 않고 부르심에 붙잡히는 자유가 제자의 첫걸음이라는 뜻이다. 장례와 같은 가장 중대한 도리 앞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는 부르심이 도리의 순서를 새로 정렬한다. 무엇이 더 급한가가 아니라 무엇이 더 영원한가를 기준으로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결단, 그것이 제자도를 오늘의 시간표로 번역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는 말씀은 각오가 아니라 방향을 묻는다. 과거의 미련이나 인간적인 정에 발목 잡히지 않고, 앞서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곧게 밭고랑을 내리듯 한 길을 오래 걷는 일, 그 꾸준함이 제자의 체력이다.
이 정신은 마태복음 10장에서 구체적인 길잡이를 얻는다. 여벌 옷과 지팡이조차 의지하지 말라는 파송의 지침은 무모함을 강요하려는 말이 아니다. “일꾼이 그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약속에 뿌리내린 현실적인 영성, 곧 하나님이 준비하신 공급을 신뢰하는 훈련이자 동시에 교회가 사역자의 필요를 정당하게 돌보아야 한다는 원리다. 장재형목사는 이 균형을 놓치지 않는다. 현장의 일꾼은 계산된 안전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배우고, 공동체는 그 신실하심의 통로로 부름 받았음을 자각한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장에서 바울이 보여준 장면은 제자도의 성숙을 증명한다. 고린도에서 아굴라·브리스길라와 함께 장막을 만들며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하던 그는, 마게도냐 교회의 선교 헌금이 도착하자 곧장 생업을 멈추고 말씀 사역에 전념했다. 여기서 드러나는 자비량의 본뜻은 사역비를 영구히 거부하는 금욕이 아니라, 복음의 진전을 위해 형편을 분별하고 유연하게 적용하는 지혜다. 전방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과 후방에서 재정과 기도로 받쳐 주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충성할 때, 복음은 더 멀리 더 맑게 흐른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전방·후방 선교의 협력은 바로 이 성경적 결을 오늘의 구조와 문화 속에 다시 짜 넣으려는 노력이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헌신할 필요는 없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헌신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이 흐름을 따라 고린도전서 9장은 제자도와 리더십의 결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낸다. 바울은 사역자의 정당한 권리를 분명히 인정한다. 복음으로부터 생계를 얻을 권리, 가정을 꾸릴 권리, 손수 일하지 않을 권리, 군인·농부·목자의 비유와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율법의 원리를 통해 사역자가 복음으로 사는 것이 합당하다고 논증한다. 그러나 그는 즉시 다른 길을 택한다.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라.” 장재형목사가 주목하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참된 리더는 권리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권리를 아는 만큼 스스로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권리를 포기하는 행위는 체면을 위한 금욕이 아니라, 복음의 문턱을 낮추고 연약한 자들의 양심을 지키려는 사랑의 실천이다. 혹여 누군가 그를 돈 때문에 일한다고 오해할 가능성,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값비싼 소식처럼 보일 위험을 원천 차단하려고, 바울은 자비량의 수고를 기꺼이 떠맡았다. 그리고 그는 단호하게 못 박는다. “나는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내 자랑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 그에게 복음 전파는 선택이 아니라 부득불 해야 할 명령이었고, 상급은 외적 보상이 아니라 “값없이 전함” 그 자체였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제자도의 척도를 제안한다. 무엇을 더 소유하느냐보다 무엇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느냐가 리더십의 깊이를 가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비량을 모든 사역자에게 획일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바울이 때로는 일했고 때로는 전념했던 것처럼, 제자도는 현실을 무시하는 낭만이 아니다. 교회의 충분한 후원이 사역의 집중도를 높이는 시기가 있고, 자비량이 복음의 신뢰성을 증언하는 시기가 있다. 장재형목사가 제시하는 질문은 단순하다. 이 선택이 복음의 전진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 연약한 자들에게 걸림돌이 되는가, 공동체의 질서와 재정을 무너뜨리지 않는가. 이 질문에 따라 재정은 투명하고 단순해야 하며, 목적 지정 헌금과 일반 헌금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보고는 신뢰를 낳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일꾼이 그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원리를 절차로 번역해 사역자 지원을 은혜의 시혜나 눈치 보기의 대상이 아니라 합당한 질서로 정착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전임 사역과 자비량 사역은 우열이 아니라 형태의 차이이며, 교회는 각각이 복음에 더 유익하도록 코칭하고, 전환이 필요할 때 지혜롭게 돕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제자도의 언어를 일상의 문법으로 바꾸어야 한다. 무소유의 자유는 수입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소유에 묶이지 않는 마음의 훈련이다. 내가 없으면 불안한 것들이 무엇인지, 그것이 사명 수행을 가로막는지, 그 대상들에 대해 실제로 하나님께 신뢰의 행동을 했는지 점검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우선순위의 재편은 시간 관리에서 드러난다. 달력은 신앙고백의 거울이기에, 말씀과 기도, 제자 양육과 현장 전도의 시간을 사무처럼 배정하고, 성과를 숫자보다 사람의 변화로 기록하는 훈련이 요구된다. 뒤돌아보지 않는 헌신은 관계에서 증명된다. 리더의 말은 약속이 되고, 약속은 곧 길이 된다. 힘들다고 관계를 쉽게 갈아치우지 않고 오래 참고 다시 시작하는 끈기가 공동체에 안전을 준다. 자비량의 영성은 직업과 소명의 통합에서 가장 빛난다. 직장은 생계 수단이 아니라 파송지이고, 전문성은 복음을 위한 언어다. 바울에게 장막은 복음의 가림막이 아니라 복음의 다리였듯, 오늘의 전문가·자영업자·학생·창업자는 각자의 현장에서 성실과 탁월함으로 복음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제자도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 정보의 과잉은 결단의 결핍을 낳는다. 많은 콘텐츠를 소비해도 한 가지를 오래 순종하지 않으면 영적 근육은 자라지 않는다. 장재형목사는 “뒤돌아보지 않는 헌신”을 온라인 습관에도 적용하라고 권면한다. 말씀을 스크롤로 흘려보내지 말고 삶의 규칙으로 새겨 넣으라. 공동체는 빠른 캠페인보다 느린 동행을 귀히 여기고, 사람을 프로젝트로 다루지 말고 사랑으로 낳아 말씀으로 키워야 한다. 리더는 말의 밀도가 아니라 삶의 일관성으로 신뢰를 얻는다. 약속한 작은 일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결국 큰일도 맡을 수 있다.
결국 핵심은 권리의 신중한 사용이다. 권리를 모르는 순진함은 오래가지 못하고, 권리를 남용하는 미성숙은 공동체를 상하게 한다. 그러나 권리를 복음의 기준으로 절제하는 성숙은 교회를 세운다. 바울은 합법의 선에서 멈추지 않고 복음의 아름다움으로 나아갔다. 오늘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것이 내게 합법한가를 넘어, 형제에게 유익한가, 복음에 아름다운가. 리더는 합법에서 아름다움으로 이동하는 사람이며, 그 이동의 에너지는 사랑이다. 그래서 참된 지도자는 제자다. 세상의 기준을 뒤집는 자유로, 영원의 가치를 현재에 우선하는 지혜로, 뒤돌아보지 않는 충성으로, 그리고 복음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권리를 제한하는 사랑으로 자신을 세운다. 그런 리더를 통해 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낳고, 교회는 권력으로가 아니라 생명으로 승계된다. 누가복음 9장의 자유, 마태복음 10장의 신뢰, 사도행전 18장의 자비량, 고린도전서 9장의 권리 포기는 한 줄기 강물처럼 합류하여 오늘 우리의 교회로 흘러든다. 우리가 이 부르심에 응답해 각자의 자리에서 전방이든 후방이든 충성으로 설 때, 복음은 값없이, 그러나 결코 싸구려가 아닌 존귀함으로 다시 빛날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자체가 우리의 상급이 될 것이다.
1. Vérité et autorité révélées dans l’interrogatoire de Pilate
La situation dans laquelle Jésus est amené devant Pilate et soumis à un interrogatoire se trouve détaillée dans la seconde partie de Jean 18 et le début de Jean 19. Cette scène se déroule à la fin de la vie publique de Jésus, juste avant sa crucifixion. Elle constitue à la fois un moment dramatique et théologiquement crucial dans le procès qui aboutira à la mort de Jésus sur la croix. Le passage décrit Jésus se tenant devant le gouverneur romain, Pilate, après avoir été arrêté et jugé par les grands prêtres et le tribunal religieux juif. En particulier, les paroles et l’attitude de Jésus au cours de l’interrogatoire de Pilate, ainsi que la réaction de Pilate, mettent en évidence, de manière frappante, ce qu’est la vérité. En même temps, l’hypocrisie et la culpabilité des chefs religieux juifs, associées à la dynamique perverse de la foule, sont exposées au grand jour.
Lorsque Jésus est conduit devant Pilate, il vient déjà de passer une nuit à subir les interrogatoires des chefs religieux, qui l’ont finalement accusé de blasphème pour s’être proclamé “Fils de Dieu”. Cependant, les Juifs ne pouvaient pas légalement exécuter la peine de mort selon leurs propres coutumes ou lois (Jn 18:31). Ils livrent donc Jésus à Pilate, dans le but d’obtenir de lui une condamnation à mort, puisque seul le gouverneur romain – représentant le pouvoir de Rome – était habilité à autoriser et à exécuter une sentence capitale en Judée.
La première question de Pilate, lorsqu’il fait face à Jésus, est : « Es-tu le roi des Juifs ? » (Jn 18:33). Les chefs juifs avaient transformé l’accusation portée contre Jésus en une accusation de rébellion contre Rome, alléguant qu’il se proclamait “roi des Juifs” et menaçait ainsi l’Empire romain. Mais Jésus répond clairement qu’il n’est pas un roi au sens terrestre et politique. Il déclare : « Mon royaume n’est pas de ce monde » (Jn 18:36), montrant ainsi qu’il n’a aucune intention de s’emparer de quelque trône politique dans la structure romaine ou juive, ni d’exercer un pouvoir terrestre par la force. Pour Pilate, c’est une déclaration d’une grande importance : en tant que représentant de Rome, il craignait avant tout les révoltés politiques ou les traîtres à l’empire. Or, Jésus précise que son Royaume n’appartient pas à l’ordre politique ni aux puissances séculières dont Pilate est un acteur.
Cette parole de Jésus recèle deux significations profondes. Premièrement, le royaume de Jésus est le royaume éternel de Dieu, un royaume où règnent la vérité et l’amour. Il ne s’appuie pas sur des moyens politiques ou militaires. Au contraire, il libère l’humanité de la puissance du péché et de la mort, offrant le salut et la vie éternelle. Deuxièmement, Jésus désamorce d’emblée le risque que Pilate puisse le considérer comme un rebelle politique. En effet, Jésus lui fait observer que si son royaume était de ce monde, ses disciples se seraient battus pour l’empêcher d’être livré aux Juifs (Jn 18:36). Aux yeux de Pilate, cette explication était sans doute convaincante : aucune résistance armée ne s’était manifestée. Jésus proclame ainsi que son Royaume est, par essence, différent des royaumes de ce monde, qui s’imposent par la force, et qu’il est donc totalement étranger à l’image de rebelle que les chefs juifs tentaient de lui attribuer.
À cette déclaration, Pilate demande encore : « Tu es donc roi ? » (Jn 18:37). C’est comme s’il disait : « Es-tu vraiment sûr de posséder une autorité royale ? » Pilate ne sait pas très bien quel est ce “royaume d’un autre ordre”, mais il pressent, au contact de Jésus, qu’il n’a pas affaire à un simple prisonnier politique. Il devine peut-être en Jésus quelque chose qui relève d’une autorité et d’une vérité supérieures. La réponse de Jésus est, encore une fois, très claire : « Tu le dis, je suis roi. Je suis né et je suis venu dans le monde pour rendre témoignage à la vérité. Quiconque est de la vérité écoute ma voix » (Jn 18:37). Jésus met l’accent sur le fait qu’il est lui-même la Vérité, qu’il est venu dans ce monde pour “rendre témoignage à la vérité”. Et il précise que seuls ceux qui “appartiennent à la vérité” peuvent entendre sa voix.
La phrase « Quiconque est de la vérité écoute ma voix » exprime un principe théologique et spirituel crucial. Autrement dit, peu importe l’instruction, le statut religieux ou la puissance politique d’une personne : si elle ne connaît pas la vérité, elle ne pourra pas discerner la voix de Jésus. En revanche, toute personne dont le cœur est véritablement ouvert par l’Esprit de Dieu, toute personne humble en quête de vérité – qu’elle soit gouverneur romain ou habitant d’une lointaine région de Galilée – peut accueillir la parole de Jésus comme la vérité du Roi, et le reconnaître pour qui il est. Pourtant, dans l’Évangile de Jean, on lit que Pilate, à cette déclaration, rétorque : « Qu’est-ce que la vérité ? » (Jn 18:38), avant de se détourner de Jésus, sans attendre de réponse. Cette remarque indique que Pilate n’a pas, ou n’a plus, de réelle disposition à écouter et à s’engager envers la vérité.
Par la suite, Pilate déclare à deux reprises à la foule juive : « Je ne trouve en lui aucun motif de condamnation » (Jn 18:38). Pour lui, Jésus ne méritait pas la peine de mort. De plus, en écoutant directement Jésus, Pilate dut éprouver qu’il n’avait pas affaire à un agitateur politique, mais au contraire à un homme impressionnant de dignité et de pureté. Il reconnaît publiquement qu’il ne trouve aucune faute en Jésus, déclaration qui démontre la conclusion à laquelle il était parvenu. Pourtant, les chefs et la foule juive insistent pour exiger l’exécution de Jésus, allant même jusqu’à réclamer la libération d’un criminel notoire, Barabbas (Jn 18:40). Barabbas était un voleur, un agitateur, un meurtrier (Mc 15:7 ; Lc 23:19 ; Ac 3:14). Du point de vue romain, c’était un bandit si dangereux qu’il méritait la peine capitale. Mais les chefs religieux, manipulant et pressant Pilate, parviennent à faire basculer le procès en faveur d’une condamnation de Jésus.
Malgré son désir apparent d’épargner Jésus, Pilate finit par céder à la pression de la foule, aux enjeux politiques et à la menace selon laquelle : « Si tu relâches cet homme, tu n’es pas l’ami de César » (Jn 19:12). De fait, avant de le livrer à la croix, Pilate fait fouetter Jésus, pensant peut-être calmer la foule par la violence (Jn 19:1). Puis il se prête à la dérision : il fait tresser une couronne d’épines que l’on pose sur la tête de Jésus, et on l’habille d’un manteau de pourpre (Jn 19:2–3). Pilate espérait sans doute apaiser la colère populaire en infligeant à Jésus une humiliation publique, mais cela ne fait qu’attiser les cris réclamant la crucifixion.
Ainsi, l’interrogatoire de Pilate révèle que, même du point de vue du pouvoir séculier, Jésus est innocent. Pourtant, le processus conduit à ce paradoxe : l’Innocent est condamné à mort à cause de la méchanceté humaine, de l’hypocrisie religieuse, et du compromis politique. À trois reprises, Pilate déclare : « Je ne trouve aucun crime en lui » (cf. Jn 18:38, 19:4, 19:6), mais finit par entériner la crucifixion. Dans tout cela, l’Évangile de Jean souligne que Jésus est injustement condamné, tout en montrant que cette mort s’inscrit dans le plan rédempteur de Dieu.
De ce passage évangélique, on peut dégager trois points-clés :
L’innocence de Jésus : Le fait que le gouverneur romain lui-même déclare à plusieurs reprises qu’« il ne trouve aucune faute en Jésus » manifeste, dans un contraste saisissant, que Jésus est sans péché.
Le Royaume de Jésus n’est pas de ce monde : Jésus n’est pas un rebelle politique, ni un roi terrestre. Il est le roi de la vérité et le souverain du Royaume de Dieu. Ainsi, la parole « Mon royaume n’est pas de ce monde » (Jn 18:36) est un repère essentiel pour l’identité du chrétien : elle indique vers quel royaume et quelle souveraineté nous devons orienter notre vie.
Le rejet de la vérité par les autorités religieuses et politiques : Alors même qu’ils se réclament de Dieu et attendent le Messie, les chefs religieux juifs rejettent le Fils de Dieu pour préserver leurs intérêts et leur pouvoir. Ce faisant, ils crucifient celui qu’ils auraient dû accueillir. Cette scène illustre la manière dont, lorsque la vérité paraît, les hypocrites et les menteurs se trouvent exposés et jugés.
David Jang목사 souligne, dans cette scène où Jésus se tient devant Pilate, l’importance pour les croyants de méditer profondément sur la démarche et l’attitude que nous sommes appelés à avoir dans notre foi. Face à l’affirmation de Jésus selon laquelle il est « venu dans le monde pour rendre témoignage à la vérité », il invite l’Église et les chrétiens d’aujourd’hui à réfléchir à l’attitude à adopter devant les pouvoirs de ce monde. David Jang목사 parle souvent du concept de « la royauté de la vérité de Jésus » : il ne s’agit pas d’entrer en conflit ou en rébellion contre les autorités terrestres, mais de reconnaître en Jésus le souverain qui est venu donner la vie à l’humanité souillée par le péché, la mort et le mensonge. Ceux qui n’appartiennent pas à la vérité n’entendront pas la voix de Jésus et finiront par se soumettre au pouvoir du monde ou l’utiliser pour assouvir leurs convoitises. Mais ceux qui sont de la vérité, c’est-à-dire ceux qui reconnaissent Jésus comme roi, sont appelés à suivre l’exemple que Jésus a donné : bien que le Royaume de Dieu ne soit pas “de ce monde”, il y est cependant présent pour proclamer la vérité.
Ainsi, l’interrogatoire de Pilate réunit à la fois la mise en évidence de l’innocence de Jésus et la révélation du chemin rédempteur qui le conduit, malgré tout, à la croix. Quand les chrétiens méditent ce passage, ils perçoivent que l’enseignement de Jésus – l’amour, le pardon, la foi dans le Royaume de Dieu – se situe à un tout autre niveau que celui des puissances de ce monde et des intérêts religieux institutionnels. Aujourd’hui encore, nombreux sont ceux qui ne reconnaissent pas Jésus, tout comme ceux qui, dans ce récit, n’ont pas compris qui il était. Cependant, Jésus poursuit inlassablement l’annonce de la vérité, et sa crucifixion, en apparence insensée, est la voie choisie par Dieu pour sauver l’humanité. L’attitude majestueuse et humble de Jésus devant Pilate anticipe déjà la victoire de la résurrection.
En somme, l’interrogatoire de Pilate illustre la manière dont la voie des chrétiens se distingue des puissances terrestres. Les royaumes de ce monde reposent souvent sur la violence, la coercition, la stratégie politique, le pouvoir militaire et économique – l’Empire romain de l’époque de Jésus en étant un exemple emblématique. Le “Royaume de Dieu” tel que l’exprime Jésus, au contraire, peut sembler faible et se termine même sur un instrument de torture humiliant, la croix. Pourtant, dans cette crucifixion, Dieu déploie la puissance de la résurrection et offre la véritable liberté. C’est cette « royauté de la vérité » que l’évangéliste Jean souligne de manière si saisissante.https://www.youtube.com/watch?v=2fuLEttN1gs
2. La tension entre les pouvoirs du monde et le Royaume de Dieu
La parole de Jésus à Pilate : « Mon royaume n’est pas de ce monde » (Jn 18:36) a suscité, tout au long de l’histoire, de nombreuses interprétations et applications. À certaines époques, on s’en est servi pour justifier une totale séparation entre l’Église et le monde. D’autres y ont vu un appel à transformer activement les domaines politique, économique et culturel, en interprétant cette transformation comme l’expansion du Royaume de Dieu. Cependant, dans le contexte de l’interrogatoire, lorsque Jésus dit « Mon royaume n’est pas de ce monde », il affirme que son autorité ne se limite ni ne s’explique à l’aune des enjeux politiques de Pilate ou de l’horizon religieux des chefs juifs. Jésus, dans ses buts et dans ses méthodes, se fonde sur une vérité que le monde ne saurait ni comprendre ni imiter. Les détenteurs du pouvoir, eux, cherchent à instrumentaliser la “vérité” pour leurs intérêts. Jésus, au contraire, déclare : « Quiconque est de la vérité écoute ma voix » (Jn 18:37), soulignant que cette vérité n’a rien à voir avec le statut social, la force ou le pouvoir politique.
La tension entre la vérité et le pouvoir du monde se retrouve dans tout l’Évangile. Les conflits répétés de Jésus avec le pouvoir religieux, aboutissant à son procès devant Pilate, représentant du pouvoir séculier, en constituent le moment le plus emblématique. Et pourtant, ironie du sort : Pilate, en tant que représentant de l’autorité romaine qui condamne Jésus à la crucifixion, reconnaît à trois reprises qu’il ne trouve aucune faute en lui. Cela démontre, d’une part, que même le pouvoir du monde ne pouvait nier l’innocence et la pureté de Jésus, et d’autre part, que Jésus n’a pas cherché à s’opposer par la force ou la manigance politique. Il supporte en silence les coups de fouet et les humiliations. Cela révèle que la souveraineté de Jésus appartient à un ordre radicalement différent de celui des puissants de la terre.
Pourquoi, alors, les chefs juifs et la foule ont-ils eu tant d’acharnement à tuer Jésus ? Parce qu’il ébranlait l’ordre religieux établi, mettant en lumière leur hypocrisie et leur abus d’autorité, en démasquant leur manière d’opprimer les gens sous couvert d’enseignement. Ils ont donc estimé devoir l’éliminer pour préserver leurs privilèges. Sous prétexte d’accusation de rébellion à l’égard de Rome, ils ont poussé Pilate à prononcer la crucifixion. Extérieurement, on aurait pu croire à leur “ferveur religieuse”, mais ils rejetaient en réalité le Messie qu’ils disaient attendre. Ainsi, se confirme la parole de Jésus à Pilate : ceux qui ne sont pas de la vérité ne le reconnaissent pas comme tel. Pilate, de son côté, bien qu’ayant posé la question « Qu’est-ce que la vérité ? » (Jn 18:38), n’a pas cherché à connaître la réponse. Au lieu de cela, il a cédé à ses propres craintes et calculs politiques. Jésus, lui, accepte de porter sur la croix la méchanceté de l’humanité et de réaliser le salut.
La question des responsabilités respectives de Pilate et des chefs juifs dans la mort de Jésus a été largement débattue par les théologiens. Qui a vraiment mis Jésus à mort ? Les Évangiles affirment que la mort de Jésus n’est pas seulement le résultat d’une manigance religieuse ou politique, ni d’un simple verdict judiciaire, mais un acte rédempteur prédéterminé par Dieu pour racheter l’humanité tout entière. En prenant sur lui le prix du péché, Jésus – le Juste innocent – meurt pour sauver les pécheurs. Les chefs religieux et Pilate n’ont été que des instruments dans ce dessein de Dieu, même si cela n’enlève rien à la gravité de leurs actes : ils ont fait périr un innocent. Le récit évangélique y voit le symbole de la culpabilité de l’humanité, dans la mesure où, par notre péché, nous participons tous à la crucifixion de Jésus.
David Jang exhorte les chrétiens à appliquer cette controverse entre Jésus, Pilate et la foule juive à la réalité contemporaine. Dans ses prédications, il souligne que Jésus continue aujourd’hui à “rendre témoignage à la vérité”. La question est de savoir si l’Église et les croyants appartiennent à cette vérité ou s’ils s’allient aux pouvoirs du monde en l’ignorant. Il avertit qu’il n’est que trop facile de reproduire l’attitude des chefs religieux juifs, qui ont sacrifié la vérité pour conserver leur statut et leur confort, tout en prétendant servir Dieu. On en voit des exemples lorsque l’Église, par désir d’honneurs humains, de richesses, ou par crainte de perdre sa place sociale, en vient à trahir l’essence de l’Évangile. David Jang목사 insiste : la “vraie autorité de Jésus” n’est pas faite pour combattre les puissances du monde, mais elle consiste en la venue de Jésus pour aimer et sauver une humanité corrompue par le péché et la mort. Si nous ne sommes pas de la vérité, nous tenterons d’exploiter ou de craindre le pouvoir séculier, au lieu de rester fidèles à l’exemple de Jésus, qui a affirmé son identité de roi sans pour autant recourir à la force.
Le choix de la foule de faire libérer Barabbas, au détriment de Jésus, demeure très parlant pour notre société actuelle. Il arrive parfois que les foules soutiennent des leaders violents ou extrêmes qui proposent de renverser l’ordre établi, en projetant sur eux leurs frustrations et désirs de vengeance. Barabbas était un agitateur, un criminel, mais certains voyaient probablement en lui un potentiel libérateur contre Rome. Jésus, en revanche, ne procède pas par la violence pour changer le monde. Il apporte la souveraineté du Père céleste dans la puissance de l’Esprit. Depuis l’extérieur, on le voit comme un roi humilié à la croix, un échec, mais la résurrection manifestera finalement sa victoire sur la mort. Ainsi, ceux qui se rattachent à Jésus sont appelés à rejeter les méthodes et les critères de réussite de ce monde. David Jang목사 y revient souvent, citant l’apôtre Paul : « Nous n’avons pas à lutter contre la chair et le sang, mais contre les dominations, contre les autorités, contre les princes de ce monde de ténèbres… » (cf. Ép 6:12). Ce n’est pas dans un affrontement de forces visibles que se construit le Royaume de Dieu, mais en tenant fermement la vérité et en pratiquant l’amour dans la puissance de l’Esprit.
En même temps, la parole « Mon royaume n’est pas de ce monde » ne doit pas être interprétée comme un appel à fuir totalement la société. Dans un autre passage de l’Évangile de Jean, Jésus prie pour ses disciples : « Je ne te prie pas de les enlever du monde, mais de les préserver du mal » (Jn 17:15). Autrement dit, ils sont envoyés vivre dans le monde tout en résistant à la corruption qui y règne, guidés par la vérité et l’Esprit Saint. De plus, Jésus déclare : « Comme le Père m’a envoyé, moi aussi je vous envoie » (Jn 20:21). Cela veut dire que, même si nous sommes citoyens du Royaume de Dieu, notre vocation est de rayonner et de transmettre l’Évangile au sein même de ce monde. David Jang목사 insiste : « Si les disciples de Jésus se retiraient pour vivre entre eux, l’œuvre de la croix resterait inachevée. » Il nous invite donc à maintenir la sainteté et la séparation d’avec le péché, tout en servant activement la société autour de nous avec la vérité et l’amour de Christ.
Néanmoins, discerner la vérité et s’y attacher ne va pas de soi. Les chefs religieux juifs, pourtant zélés pour la Loi et affirmant attendre le Messie, n’ont pas reconnu Jésus quand il est venu. Pire, ils l’ont éliminé, car sa vérité mettait en lumière leur hypocrisie. Nous ne sommes pas à l’abri d’une telle dérive. Lorsqu’une Église se satisfait de formes religieuses, qu’elle se compromet avec les avantages du monde, et néglige la vérité radicale de l’Évangile, elle risque de passer à côté de la voix de Jésus. À l’image de Pilate, elle peut bien poser la question « Qu’est-ce que la vérité ? » sans jamais accueillir celui qui est la Vérité en personne.
C’est pourquoi David Jang목사 appelle l’Église à un examen de conscience et à un retour à l’essentiel de l’Évangile. L’épisode de l’interrogatoire de Jésus par Pilate confronte chaque croyant à la question : « À quel roi appartiens-tu ? » Sommes-nous inféodés au pouvoir, à la réputation, à l’argent, à la sécurité ? Ou bien comprenons-nous vraiment le “style de règne” de Jésus, qui a manifesté dans la croix l’essence de l’amour et de l’obéissance au Père ? Le Royaume de Jésus ne s’appuie pas sur la force ou la ruse, mais s’étend au travers du don de soi et de la puissance de l’Esprit. C’est ce qui différencie de manière décisive Jésus de Barabbas, agitateur assoiffé de révolution violente.
Pour les chrétiens d’aujourd’hui, imiter Jésus devant le tribunal de Pilate signifie accepter de subir parfois la raillerie, la calomnie ou l’injustice, tout en demeurant dans la vérité et l’amour de Dieu. Lorsque les puissances terrestres nous demandent : « Mais quel est ce royaume dont vous parlez ? Qui est ce roi ? », nous devons répondre, comme Jésus, avec fermeté et clarté : « Notre royaume n’est pas de ce monde. Jésus-Christ, roi de vérité, est notre souverain. » Et ce témoignage ne doit pas seulement se formuler en paroles : il doit s’incarner dans la modestie, la douceur, le sacrifice et l’amour, à l’image du Christ, afin d’être crédible.
David Jang목사 met également en exergue le sens substitutif du geste de Jésus, qui porte devant Pilate le jugement que nous aurions dû porter. Jésus, déclaré innocent, n’a jamais commis la moindre faute ; cependant, il meurt sur la croix pour prendre la place des pécheurs que nous sommes. S’il avait été coupable, la croix n’aurait pu être un sacrifice rédempteur. Mais il s’agit là d’un amour dépassant l’entendement humain : le Fils de Dieu, devenu homme, a enduré volontairement une souffrance imméritée pour libérer de la condamnation ceux qui mettront leur foi en lui. Pour David Jang목사, se dire chrétien consiste à croire et recevoir ce don de salut, puis à laisser cette même logique d’amour guider notre conduite quotidienne.
Comment ce conflit entre l’« autorité de Jésus » et les « pouvoirs du monde » s’observe-t-il concrètement dans notre existence moderne ? Souvent, il ne s’agit pas de procès politiques spectaculaires, mais de situations ordinaires dans lesquelles on fait pression sur nous pour que nous compromettions la vérité afin de gagner des avantages personnels ou d’éviter des ennuis. Le chrétien est appelé à refuser de mentir, de flatter, de piétiner les faibles pour progresser. Il peut arriver qu’il subisse des injustices, tout comme Jésus devant Pilate. Pourtant, c’est la voie de la croix, l’imitation de Jésus. David Jang목사 affirme : « Si nous restons fermes dans la vérité face à la dérision du monde qui nie l’existence d’un roi et d’une vérité absolue, nous pourrons certes connaître la souffrance. Mais au terme de cette route nous attend la résurrection, la vie éternelle, et la gloire du Royaume de Dieu. »
Il met aussi en garde contre la possibilité que, même au sein de l’Église, des attitudes semblables à celles de Pilate ou des chefs religieux réapparaissent. Il se peut qu’une communauté chrétienne se concentre sur la splendeur de ses cultes, la multiplication de ses programmes, ou encore l’expansion numérique, tout en s’éloignant de la vérité et de l’amour. C’est alors comme si, sous couvert de dire « Seigneur, Seigneur » (Mt 7:21), on crucifiait Jésus à nouveau. Or Pilate avait certes le désir de libérer Jésus, mais il était trop faible ou opportuniste pour résister à la foule. Les chefs juifs, eux, suivaient scrupuleusement la Loi en apparence, mais, en réalité, rejetaient le cœur de Dieu manifesté en Jésus.
Ce récit illustre donc clairement comment se combinent, dans le monde, l’injustice du pouvoir, le rejet de la vérité et l’hypocrisie religieuse. Simultanément, il montre que Jésus, porteur de la vérité et de l’amour, endure tout pour opérer le salut. David Jang목사 en conclut qu’aujourd’hui encore, nous nous trouvons à la place de Pilate, face à Jésus, et confrontés à la même interrogation : « Qu’est-ce que la vérité ? À quel roi obéis-tu ? » Le croyant doit répondre : « Je suis de la vérité, donc j’écoute la voix de Jésus. Jésus est mon Roi. » Et il doit le prouver par son mode de vie, au sein de l’Église comme dans la société, en rayonnant la vérité et l’amour du Christ.
Dans cet interrogatoire de Pilate, nous voyons la proclamation de l’innocence de Jésus, l’affirmation de sa royauté fondée sur la vérité, et le constat effrayant que la foule et les chefs religieux, aveuglés par leurs craintes et leurs convoitises, ont condamné le Seigneur sans faute. Pourtant, c’est précisément par cette crucifixion, injuste aux yeux des hommes, que s’accomplit le plan divin de rédemption. Jésus meurt, puis ressuscite, détruisant ainsi la mort et inaugurant le règne éternel de Dieu. Seuls ceux qui appartiennent à la vérité, ceux qui reconnaissent Jésus comme roi, peuvent saisir ce mystère. Ils reçoivent la vie éternelle en échappant au péché et à la mort.
Pour le chrétien, ce passage rappelle la vocation à vivre “dans le monde, sans être du monde”. À la suite de Jésus qui, face à Pilate, annonce qu’il est venu rendre témoignage à la vérité, David Jang목사 insiste : de nos jours, beaucoup demandent encore : « Qu’est-ce que la vérité ? » sans parvenir jusqu’au Christ. L’Église, elle aussi, peut se laisser corrompre, nouer des alliances avec les puissances terrestres et s’éloigner de Jésus, à l’instar des anciens chefs juifs. Aussi devons-nous constamment veiller, par la prière et la Parole, à écouter le Seigneur et à proclamer sans crainte : « Mon royaume n’est pas de ce monde. » Cela ne signifie pas s’extraire ou fuir le monde, mais affirmer notre identité de citoyens du Ciel, inébranlables dans la vérité, et accomplir notre mission de témoignage au milieu du siècle présent.
L’interrogatoire de Pilate est donc un événement où Jésus se révèle comme “roi de la vérité” et où Pilate et les chefs juifs, tout en refusant de voir cette vérité, exposent leur propre péché. Mais, en définitive, la croix de Jésus devient le canal par lequel s’accomplit le plan rédempteur de Dieu. Et aujourd’hui, nous avons accès à la vérité qui libère du péché et de la mort. « Quiconque est de la vérité écoute ma voix » : cette parole de Jésus demeure d’actualité, et David Jang목사 nous exhorte à entretenir notre foi en accueillant Jésus comme roi de notre vie. À la suite du Christ, nous devons, dans l’humilité, annoncer l’Évangile en plein cœur du monde, pour qu’il puisse, de la simple question « Qu’est-ce que la vérité ? » progresser jusqu’à la rencontre personnelle avec Jésus-Christ, la Vérité. C’est là tout l’enjeu de ce passage et la mission qui incombe aujourd’hui à ceux qui se réclament disciples du Seigneur.
1. The Truth and Authority Revealed in Pilate’s Interrogation
The account of Jesus being brought before Pilate and interrogated is recorded in detail in the latter part of John 18 through the beginning of John 19. This scene takes place near the end of Jesus’ public ministry, just before He is crucified, making it an event of great dramatic and theological significance in the passion narrative. The text depicts how, after Jesus was arrested and tried before the Jewish religious leaders, He was taken to the Roman governor, Pilate. In particular, the exchange that unfolds during Pilate’s interrogation reveals, in a dramatic way, what truth is. At the same time, it also exposes the sinfulness of the Jewish high priests and religious leaders, as well as the destructive power of a frenzied mob.
By the time Jesus stood before Pilate, He had already been arrested by the religious leaders, interrogated overnight, and charged with blasphemy for claiming to be the Son of God. However, because the Jews, according to their customs or law, could not execute a capital punishment on their own (John 18:31), they brought Jesus to the Roman governor, Pilate, to secure a death sentence. As the official appointed by the Roman Empire to govern Jerusalem and its surrounding regions, Pilate held the authority to carry out executions in Judea.
When Pilate first meets Jesus, he asks, “Are You the King of the Jews?” (John 18:33). This was partly because the Jewish leaders had twisted the charge against Jesus to portray Him as someone who claimed to be “the King of the Jews,” thereby committing treason against Rome. But Jesus clearly indicates that He is not a king in any earthly, political sense. He says,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John 18:36), underscoring that He has no intention of seizing the throne through Rome’s political systems or the Jewish people’s existing political structures, nor of ruling by force. For Pilate, this was a critical statement, because as a Roman governor, what he most feared was a rebel—a political criminal who might threaten the Roman Empire. Yet Jesus emphasized that the kingdom He pursued did not belong to the political order or sphere of authority that Pilate represented.
Jesus’ words carry profound meaning on two levels. First, His kingdom is the eternal kingdom of God, a realm of truth and love. It does not rely on earthly political or military power; rather, it is the kingdom of God that liberates humanity from the powers of sin and death, offering salvation and eternal life. Second, Jesus preemptively countered any attempt by Pilate to interpret “King of the Jews” as evidence of a political rebellion. From Pilate’s standpoint, if Jesus were indeed a revolutionary, His disciples would have fought the Roman soldiers instead of allowing Him to be handed over to the Jews—an explanation Jesus offers in a way that likely convinced Pilate to some extent. Jesus says, “If My kingdom were of this world, My servants would be fighting so that I would not be handed over to the Jews” (John 18:36). Thus, Jesus distinguishes Himself from the worldly kingdoms maintained or expanded through violence and makes clear that He does not fit the mold of a political insurgent Pilate might have feared.
Hearing these words, Pilate again asks, “So You are a king?” (John 18:37). In other words, he is questioning whether Jesus truly possesses some kind of regal authority. Pilate did not fully understand the nature of this “otherworldly kingdom” Jesus spoke about. Yet the moment he heard Jesus’ explanation, he may have sensed that Jesus was not a mere political threat but someone who embodied a different level of authority and truth. Once again, Jesus makes His point clear: “You say correctly that I am a king. For this I have been born, and for this I have come into the world, to testify to the truth. Everyone who is of the truth hears My voice” (John 18:37). Here, Jesus proclaims that He Himself is truth and that the very purpose of His coming into the world is “to bear witness to the truth.” Moreover, only those who “are of the truth” can understand and accept His words.
The statement “Everyone who is of the truth hears My voice” carries profound theological and spiritual significance. No matter how well-educated one may be, no matter how high one’s religious standing, or how powerful one may be politically, if one does not know the truth, one cannot recognize Jesus’ voice. Conversely, anyone whose heart is opened by the Holy Spirit and who humbly seeks truth—regardless of whether that person is a Roman governor or a simple Galilean—can receive Jesus’ declaration as the truth of the King. However, the Gospel of John notes that Pilate responds with, “What is truth?” (John 18:38) and immediately leaves, without waiting for Jesus to reply. This suggests that Pilate, a politician under pressure, had neither genuine interest in nor the leisure to listen to the truth.
Afterward, Pilate announces twice to the Jewish crowd, “I find no guilt in this man” (John 18:38). From his perspective, he saw no justification for putting Jesus to death. Moreover, Pilate himself, having heard Jesus’ words, was likely impressed, concluding that “This man is not a political rebel but seems dignified and innocent.” Indeed, by declaring he “found no guilt,” Pilate showed his own assessment. But the Jewish leaders and the crowd persistently demanded Jesus’ crucifixion, to the point of asking that the notorious criminal Barabbas be released instead (John 18:40). Barabbas was a robber, an instigator of insurrection, and a murderer (Mark 15:7; Luke 23:19; Acts 3:14)—in other words, clearly guilty of crimes worthy of execution by Roman law. Yet, pressured by these religious leaders, Pilate was forced to direct the trial toward Jesus’ crucifixion.
Although Pilate wished to set Jesus free, he eventually gave in to the crowd’s demands, political concerns, and their threat: “If you release this man, you are no friend of Caesar” (John 19:12). Before handing Jesus over to be crucified, Pilate tries to appease the people’s fury by having Him flogged (John 19:1). Then, Pilate’s soldiers mockingly place a crown of thorns on His head and dress Him in a purple robe (John 19:2–3). Pilate may have hoped that by subjecting Jesus to such harsh punishment, the crowd would be satisfied and He might be spared. Instead, they only cried out all the more for Jesus to be crucified.
Hence, Pilate’s interrogation shows that even a worldly authority figure recognized Jesus’ innocence, yet the sinless Lord was ultimately condemned to death in the midst of human malice, religious hypocrisy, and political compromise. Although Pilate himself declared three times that he found no fault in Jesus (John 18:38; 19:4; 19:6), he still sentenced Him to be crucified. Through this sequence of events, the Gospel of John demonstrates that, while Jesus was unjustly condemned, His death was also part of God’s redemptive plan.
From this portion of John, we can glean several important points. First, it underscores Jesus’ innocence. Even a Roman governor declared, “I find no guilt in this man,” offering historical testimony to Jesus’ blamelessness. Second, Jesus was not a political rebel or an earthly king; He is the King of truth and the Ruler of the Kingdom of God. His statement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serves as a foundational guideline for Christians today regarding where our identity must be rooted. Third, we see the paradox of truth being rejected by false religious power in alliance with political expediency. The Jewish religious leaders outwardly served God and awaited the Messiah, but when the Messiah finally appeared, they led the charge to kill the Son of God in order to protect their religious privileges. This scene vividly illustrates that “when truth manifests, falsehood and hypocrisy are exposed and judged.”
Pastor David Jang, reflecting on Jesus standing before Pilate, emphasizes that we must deeply ponder the direction and posture our faith should adopt. In particular, Jesus said He came “to testify to the truth,” which raises a vital question for today’s churches and believers: How should we conduct ourselves when facing worldly authority? Pastor David Jang often refers to the concept of “the royal authority of Jesus’ truth,” explaining that it is not meant to clash or contend with worldly powers but rather to recognize Jesus as the life-giving King who came to a humanity steeped in sin, death, and falsehood. Those who do not belong to the truth cannot hear Jesus’ voice and will ultimately bow to worldly power or exploit it to fulfill their own desires. However, those who belong to the truth—those who truly recognize Jesus as King—must strive to emulate Jesus’ example, in which “the Kingdom of God, though not of this world, enters into the world and proclaims truth.”
Thus, the scene of Pilate’s interrogation encapsulates both Jesus’ innocence and His acceptance of suffering on the road to the cross. When Christians meditate on this text, they realize that the truth Jesus proclaimed—love, forgiveness, and assurance of God’s Kingdom—is of an entirely different order from the approach of worldly rulers or religious elites. Just as the world did not truly understand Jesus then, many in our time also do not recognize, or outright reject, the voice of the true Gospel. Yet Jesus continues to proclaim truth to the end, even when it leads Him to be crucified. This seemingly foolish way, the way of the cross, is in fact God’s way of saving humankind. Therefore, the majestic yet meek figure of Jesus before Pilate contains within it the seed of victory, later confirmed by the resurrection.
Pilate’s interrogation reveals how the path of the Christian diverges from worldly power. Earthly kingdoms are built and preserved primarily through violence, intimidation, political scheming, military might, or economic strength. The Roman Empire of Jesus’ day was a prime example. By contrast, Jesus’ “Kingdom of God” may appear powerless on the surface—ending in the shameful instrument of the cross—yet within it lies the proclamation of resurrection, eternal life, and genuine freedom. This is what John dramatically highlights as Jesus’ “royal authority of truth.”
2. The Tension Between Worldly Power and the Kingdom of God
Jesus’ statement to Pilate,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John 18:36), has elicited countless interpretations and applications throughout history. In some periods, this verse was used to justify a complete separation between church and the secular world. In others, people have interpreted it as a call to engage actively in society’s political, economic, or cultural spheres, believing that transforming these arenas is tantamount to expanding God’s Kingdom. However, in the immediate context,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indicates that Jesus’ authority transcends both Pilate’s political concerns and the Jewish religious leaders’ framework. Jesus’ purpose and method are anchored in a truth that the world does not understand and cannot replicate. Worldly rulers tend to use any notion of truth as a means to advance political or economic self-interest and ambition. But Jesus firmly states that “only those who are of the truth” can hear His voice, emphasizing that one’s ability to grasp this truth is unrelated to superficial status or capabilities.
This tension between truth and worldly power appears repeatedly throughout the Gospels. During Jesus’ public ministry, He constantly clashed with religious authorities, and eventually He was condemned by the secular authority of Rome under Pilate’s judgment, ending on the cross. Yet paradoxically, the very person (Pilate) who sentenced Jesus to be crucified also declared three times that he could find no guilt in Him. This conveys that even worldly power structures had to admit Jesus’ innocence and purity. Nonetheless, Jesus did not protect Himself or rise against Pilate with cunning or force. Instead, He endured flogging and mockery in silence. This underscores just how radically different Jesus’ kingship is from the type of power earthly rulers seek.
Why did the Jewish leaders and the crowd so vehemently seek Jesus’ death? Because He disrupted their temple system and exposed their religious hypocrisy and authoritarian tendencies. Above all, Jesus openly revealed the oppressive and pretentious nature of those who claimed to teach others while indulging in hypocrisy. Feeling threatened that they could no longer maintain their positions of power, these religious leaders concluded that they must eliminate Jesus. Ultimately, they falsely portrayed Him before Pilate as “one who rebels against Rome” and coerced the governor to impose crucifixion by whipping up a collective frenzy. Outwardly, they claimed religious zeal, but in reality, they rejected the Messiah. Pilate, for his part, asked, “What is truth?” Yet he did not truly seek it. Confronted with the very embodiment of truth, he failed to recognize Him. Jesus, on the other hand, continued toward the cross, carrying God’s redemptive plan that surpasses all human evil.
For centuries, theologians have debated the balance of responsibility between Pilate and the Jewish religious leaders: Who ultimately killed Jesus? The Gospels present Jesus’ death not merely as the outcome of a religious or political conspiracy, nor solely a miscarriage of judicial process, but as the fulfillment of God’s plan of redemption to atone for humanity’s collective sin. Though Jesus was entirely without sin, He took upon Himself the penalty of sin so that sinners might be saved. Pilate and the Jewish leaders were merely instruments in that grand design. However, this fact does not absolve them of guilt. Their desires, ambitions, and fears led them to commit the sin of condemning an innocent man. In that sense, they represent the universal human condition, in which each one of us, through our own sinful nature, also participates in crucifying Jesus.
Pastor David Jang stresses that we must apply this confrontation—among Jesus, Pilate, and the Jewish crowd—to the life of the contemporary church and individual believers. According to his message, Jesus continues to “testify to the truth.” The question is whether the church and Christians will align themselves with the truth or whether they will disregard it by colluding with worldly authority. The conduct of the Jewish religious elite, who forsook Jesus to protect their power and privileges while outwardly professing religious devotion, can recur even today within the church. That is, clinging to human fame, property, ecclesiastical control, or social standing while undermining the essence of the Gospel and denying the way of the cross—even as one appears outwardly devout. Pastor David Jang emphatically warns against this, repeatedly underscoring that “the authority of truth Jesus demonstrated does not overthrow or negate the world but instead loves, serves, and saves sinners in it.”
Likewise, the people’s choice to release Barabbas over Jesus holds a profound message for our modern context. Sometimes people vent their frustrations or project their hopes onto extreme figures who advocate for violent measures to topple existing political or social regimes. A revolutionary like Barabbas might offer the crowd a kind of cathartic thrill, fueling the belief, “Now he’ll overthrow Rome and establish a new order we’ve always wanted.” Yet Jesus does not transform the world through violence. The kingdom over which He reigns is a kingdom that the Father administers in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Although, on the cross, He appeared to be a failed, powerless king, the resurrection revealed Him as the victorious King who conquered death. Therefore, those who belong to Jesus must adopt ways unlike those of the world. Pastor David Jang frequently cites the Apostle Paul’s words: “Our struggle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the rulers, against the powers, against the world forces of this darkness” (Ephesians 6:12). God’s Kingdom does not manifest through visible political clashes or power struggles, but rather through adherence to truth, the practice of love, and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Moreover,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does not mean that believers should completely withdraw from or isolate themselves from society. Elsewhere in John’s Gospel, Jesus prays for His disciples: “I do not ask You to take them out of the world, but to keep them from the evil one” (John 17:15). This implies that although we live within the world, we must remain untainted by its values, sustained by the truth of Christ and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At the same time, Jesus says, “As the Father has sent Me, I also send you” (John 20:21), meaning that we are to be sent into the world to preach the Gospel and shine the light of truth. Pastor David Jang maintains that if Jesus’ disciples were to withdraw and create their own separate enclave, the meaning of the cross would be diminished. Instead, believers must preserve holiness and distinction while being actively present in the world, proclaiming and living out Christ’s love and truth.
However, discerning and holding fast to the truth is not easy, despite seeming like a basic duty for the church and believers. The Jewish leaders had a passionate devotion to “keeping God’s Law” and professed to be awaiting the Messiah. But when the true Messiah came, they failed to recognize Him. Worse, they became hostile and resorted to lies in their efforts to kill Him—because the truth Jesus proclaimed exposed their hypocrisy and religious power structures. The same danger confronts us today. When a church becomes comfortable with external formalities or becomes entangled with secular interests, abandoning the substance of Jesus’ teaching for the sake of convenience, it loses the ability to hear the voice of Christ. Ultimately, like Pilate, it may ask, “What is truth?” while failing to perceive the Truth standing before it.
Pastor David Jang therefore urges the church to reflect upon itself continually and return to the essence of the Gospel. The interrogation scene before Pilate raises the question for every Christian: “To which king do we belong?” Are we chasing after worldly influence, reputation, wealth, or comfort, all the while tuning out the voice of truth? Do we truly comprehend “the way Jesus exercised His kingly authority on earth”? Are we embracing as the core of truth the love and obedience revealed by the cross? God’s Kingdom does not advance by force or cunning but through willing sacrifice, service, and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his stands in stark contrast to Barabbas, who relied on violence and rebellion.
For believers to emulate Jesus standing before Pilate means that even if we suffer ridicule, slander, or injustice, we still obey God’s will and persist in truth and love. Moreover, when worldly authorities question, “What is this kingdom you claim?” or “Who is this king you speak of?” we should respond, as Jesus did, with courage and clarity: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and our true Sovereign is Jesus Christ, the King of truth.” We must proclaim this testimony in the world. Such a confession should not end with words but must manifest in the humility, gentleness, love, and self-sacrifice that Jesus Himself exemplified.
Particularly in his teaching on Pilate’s interrogation, Pastor David Jang underscores the atoning nature of Jesus bearing all sin and false judgments on Himself. Jesus, declared innocent even by Pilate, never once sinned. Yet by dying on the cross, He took upon Himself the punishment our sins deserved, opening the way for us to be set free. If Jesus had been guilty, the cross would not have been an act of atonement. But the sinless One, by dying, assumed the burden of our sins. This is the transcendent love of God—Christ’s self-sacrifice in the flesh. In his sermons, Pastor David Jang frequently notes, “Jesus stood in that court, under the world’s judgment, so that we would not have to face the judgment for our sins.” For the Christian, to believe is to receive this love and salvation, then to emulate Christ’s way of love.
In our daily lives, how do we see Jesus’ kingship come into tension with worldly power? Often, it doesn’t take the form of grand political persecution or official trials, but appears in pressure to compromise or reject truth for the sake of personal gain, whether in workplaces, schools, or ordinary social interactions. Christians must refuse to adopt the world’s methods of lying or trampling on the weak for self-advancement. Sometimes, we may face unjust accusations and hostility. Yet we are called to respond, as Jesus did, with unwavering love and gentleness. This path is not easy, but it is the path of the cross that Jesus walked. Pastor David Jang reiterates, “If we hold onto Jesus’ truth in a world that shouts, ‘Jesus is not King, there is no truth,’ we may experience suffering. But at the end of that road, we will share in the glory of the resurrection and eternal life in God’s Kingdom.”
We must also recognize that the attitudes of Pilate and the Jewish religious leaders can emerge within our own churches. It is possible for a church to be preoccupied with flashy worship services, programs, or numerical growth while neglecting genuine truth and love. Outwardly shouting “Lord, Lord” (Matthew 7:21), such a church may, in effect, be crucifying Jesus all over again. This is a sobering reality. Pilate heard Jesus say He came “to testify to the truth,” yet he did not comprehend who that Truth was—nor did he genuinely seek to know. In the end, despite wanting to release Jesus, his political calculations won out, and he delivered the innocent man to be crucified. The Jewish leaders similarly displayed strict adherence to the Law in outward form, but they rejected the true heart of God revealed by Jesus.
These episodes highlight how injustice, hostility toward truth, and religious pretense operate within worldly power structures—while also showing how Jesus fulfills genuine truth and love in their midst. Pastor David Jang contends that “we stand daily in Pilate’s courtroom,” facing the question, “What is truth?” and “Which king do you serve?” The believer’s answer must be, “I belong to the truth. I listen to Jesus’ voice, for He is my King.” And this confession must be backed up by our manner of life—in our churches, our communities, and the larger world—where we enact Jesus’ truth and love.
In Pilate’s interrogation, we witness both Jesus’ innocence and His kingship of truth. Meanwhile, we see that the Jewish religious elite and Pilate, through false accusations, fear, and selfish desires, played a part in crucifying Him. Yet it was through this crucifixion that God’s plan of salvation was accomplished. Jesus died on the cross and rose again, overcoming death and declaring the eternal Kingdom of God. Hence, true authority, the true King, is revealed. Those who follow this King, Jesus, discover the truth that Pilate could not grasp, and they enter into life that overcomes sin and death.
For Christians, this passage reminds us that we are “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 We must devote ourselves to living out the truth of Jesus, who came to testify to it. As Pastor David Jang often observes, even now, many ask, “What is truth?” without ever coming to Jesus Himself, who is the embodiment of truth. Likewise, churches sometimes compromise with worldly power, becoming like those Jewish leaders who rejected Jesus long ago. Therefore, we must remain in God’s Word and Spirit, walking closely with the Lord, boldly declaring before worldly authorities,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This does not mean fleeing the world but rather maintaining our heavenly citizenship as we influence society with the Gospel and illuminate it with God’s truth.
Pilate’s interrogation thus stands as the moment where Jesus testifies that He is the King of truth, while Pilate and the Jewish leaders, by rejecting that truth, stand condemned by their own actions. Ultimately, Jesus’ cross fulfilled the divine plan of redemption and granted us the path to truly know the truth and be set free. Hence, “Everyone who is of the truth hears My voice” remains a call for us to embrace Jesus as the King in our lives, just as Pastor David Jang consistently exhorts. By following our King, we must humbly proclaim and practice the Gospel in the midst of the world, so that those who ask, “What is truth?” might move beyond the question to discover that the Truth is Jesus Christ. This is the powerful message and mission we inherit today from the account of Jesus standing trial before Pilate.
1. La verdad y la autoridad que se revelan en el interrogatorio de Pilato
La escena en la que Jesús comparece ante Pilato para ser interrogado se describe de manera concreta en el Evangelio de Juan, desde la segunda mitad del capítulo 18 hasta el inicio del capítulo 19. Este pasaje se ubica en la parte final de la vida pública de Jesús, justo antes de su crucifixión, y constituye un acontecimiento de gran relevancia tanto en el plano dramático como en el teológico. El texto muestra a Jesús, después de haber sido apresado y sometido al juicio religioso de los sumos sacerdotes y los líderes judíos, presentándose ante el gobernador romano, Pilato. Especialmente en el proceso de interrogatorio de Pilato, las palabras y la actitud de Jesús, así como la reacción de Pilato, revelan de manera contundente qué es la verdad. Al mismo tiempo, este episodio deja al descubierto el pecado de los sumos sacerdotes y líderes religiosos judíos, así como la perversa psicología colectiva de la multitud que exigía la muerte de Jesús.
Cuando Jesús compareció ante Pilato, ya había sido detenido por los líderes religiosos y sometido a un interrogatorio nocturno. Finalmente, se le acusó de blasfemia por proclamarse “Hijo de Dios”. Sin embargo, los judíos no podían ejecutar la pena de muerte con base únicamente en sus propias leyes o costumbres religiosas (Jn 18:31), de modo que llevaron a Jesús ante el gobernador romano Pilato con el fin de obtener una condena a muerte. Puesto que Pilato ejercía el poder delegado por el Imperio romano para gobernar Jerusalén y sus alrededores, se requería su autorización para llevar a cabo una ejecución en territorio judío.
En ese contexto, la primera pregunta de Pilato al encontrarse con Jesús fue: “¿Eres tú el rey de los judíos?” (Jn 18:33). Esto se debía a que los líderes judíos habían transformado la acusación religiosa de Jesús —autoproclamarse Hijo de Dios— en una acusación política de sedición, alegando que Jesús se declaraba “Rey de los judíos” en oposición a Roma. Sin embargo, la respuesta de Jesús deja claro que Él no es un rey terrenal ni ostenta un poder político de esta época. Jesús afirma rotundamente: “Mi reino no es de este mundo” (Jn 18:36), enfatizando que no busca un trono dentro de la estructura política romana o dentro del sistema político que los judíos imaginaban, ni tampoco ejercer su dominio por la fuerza. Para Pilato, esta aclaración resultaba de suma importancia. Como gobernador romano, él estaba particularmente alerta ante la posibilidad de que surgiera algún rebelde con intenciones de amenazar la estabilidad del Imperio. Pero Jesús deja en claro que Su Reino no se inscribe en el ámbito político o en el poder secular donde operaba Pilato.
Las palabras de Jesús adquieren un sentido profundo en dos dimensiones. En primer lugar, el Reino de Jesús es el Reino eterno de Dios, un reino donde se cumple el gobierno de la verdad y del amor. No se basa en fuerzas militares ni estructuras políticas de este mundo, sino que libera al ser humano del poder del pecado y de la muerte, ofreciendo salvación y vida eterna. En segundo lugar, Jesús previó la posibilidad de que Pilato, anclado en la idea de “Rey de los judíos”, lo calificara como un rebelde. Por eso, le explica que, si realmente tuviera seguidores dispuestos a combatir contra el Imperio romano, ya habrían luchado para impedir Su entrega a los judíos (Jn 18:36). Con esta afirmación, Jesús deja claro que Su Reino es esencialmente distinto de los reinos terrenales, que se consolidan y se expanden mediante la violencia, y subraya que no guarda relación alguna con la imagen de un rebelde político.
Ante esta explicación, Pilato vuelve a insistir: “¿Luego, tú eres rey?” (Jn 18:37). Con esta pregunta, Pilato indaga si Jesús realmente se considera poseedor de un poder real. Tal vez Pilato no comprendía a cabalidad en qué consistía ese “otro reino” al que Jesús aludía, pero al escucharlo debió captar que ante él no se hallaba un simple delincuente político, sino alguien que poseía un tipo de autoridad y de verdad completamente distinto. La respuesta de Jesús es contundente: “Tú dices que soy rey. Yo para esto he nacido, y para esto he venido al mundo: para dar testimonio de la verdad. Todo aquel que es de la verdad, oye mi voz” (Jn 18:37). Así, Jesús se proclama a sí mismo como la Verdad y señala que Su propósito al venir al mundo es testificar de ella; además, destaca que solo aquellos “que son de la verdad” pueden escuchar Su voz.
La declaración “Todo aquel que es de la verdad, oye mi voz” encierra un principio teológico y espiritual esencial. No importa cuánta educación haya recibido una persona, ni su posición religiosa o su poder político; si no conoce la verdad, no podrá entender la voz de Jesús. Por otro lado, cualquiera que reciba con humildad la iluminación del Espíritu Santo y busque la verdad, sea el gobernador romano o sea un habitante de la periferia de Galilea, podrá reconocer en las palabras de Jesús la “verdad de un Rey”. Pero, según el relato de Juan, Pilato respondió: “¿Qué es la verdad?” (Jn 18:38), y no esperó una respuesta por parte de Jesús. Este detalle deja entrever que Pilato no estaba genuinamente interesado en la verdad, o que simplemente no tenía tiempo ni disposición para buscarla, característico de un político preocupado más por la conveniencia inmediata que por la veracidad profunda.
Enseguida, Pilato declara en dos ocasiones ante la multitud judía: “Yo no hallo en él ningún delito” (Jn 18:38). Desde su perspectiva, no existía motivo para sentenciar a Jesús a la pena capital. Además, es probable que, al escuchar de primera mano las palabras de Jesús, Pilato intuyera algo de la dignidad y pureza de su persona. El hecho mismo de proclamar públicamente que no encontraba culpa alguna en Jesús refleja esa impresión. Pero los líderes religiosos y la muchedumbre judía seguían exigiendo con insistencia la ejecución de Jesús y pidieron en su lugar la liberación de Barrabás, un criminal infame (Jn 18:40). Barrabás era ladrón, agitador de motines y asesino (Mc 15:7; Lc 23:19; Hch 3:14). Para Roma, se trataba sin duda de un reo merecedor de la pena de muerte. No obstante, los líderes religiosos judíos, presionando a Pilato, siguieron atizando a la multitud para que el juicio desembocara en la ejecución de Jesús.
A pesar de que Pilato deseaba liberar a Jesús por considerarlo inocente, cedió finalmente ante la presión popular y sus cálculos políticos, sobre todo cuando lo amenazaron diciendo: “Si dejas ir a ese, no eres amigo del César” (Jn 19:12). Así que hizo azotar a Jesús, con la esperanza de calmar de alguna manera la furia del pueblo (Jn 19:1). Después, permitió que lo vistieran con un manto púrpura y le colocaran en la cabeza una corona tejida de espinas, para mofarse de Él (Jn 19:2–3). Tal vez Pilato pensaba que, tras esta burla y vejación, la multitud se daría por satisfecha y le permitiría exonerar a Jesús. Pero aquello solo encendió más la rabia popular que clamaba: “¡Crucifícalo!”.
Así, el interrogatorio de Pilato, por un lado, muestra que incluso un gobernante terrenal reconoció la inocencia de Jesús; y, por otro lado, pone en evidencia la paradoja de que, siendo Jesús inocente, acaba siendo condenado a muerte debido a la maldad, la hipocresía religiosa y la conveniencia política de los hombres. Aun cuando Pilato proclamó tres veces “No hallo en él ningún delito” (Jn 18:38; 19:4; 19:6), terminó por entregarlo a la crucifixión. Juan aprovecha este momento para mostrar que, si bien Jesús murió injustamente, ese sufrimiento formaba parte del plan divino de redención.
Las ideas centrales que emergen de esta escena del Evangelio de Juan son, en primer lugar, la absoluta inocencia de Jesús. Queda demostrado de manera histórica que ni siquiera el gobernador romano encontró en Él culpa alguna. En segundo lugar, se deja claro que Jesús no era un rebelde político ni un rey de este mundo, sino el Rey de la verdad y el Gobernante del Reino de Dios. La frase “Mi reino no es de este mundo” es una referencia clave para la identidad del creyente, al mostrar que su pertenencia espiritual no se funda en lo meramente terrenal. En tercer lugar, surge la paradoja de que la Verdad es rechazada por un poder religioso falso y un pacto político interesado. Los líderes religiosos judíos proclamaban adorar a Dios y esperar al Mesías, pero cuando el Mesías se presentó, lo rechazaron para salvaguardar su estatus y poder, participando en la condena del Hijo de Dios. Así, este pasaje ilustra que, cuando la Verdad se hace presente, la falsedad y la hipocresía quedan expuestas y terminan siendo juzgadas.
El pastor David Jang, al reflexionar sobre la figura de Jesús delante de Pilato, enfatiza que es imprescindible meditar profundamente sobre la orientación y la actitud que debe tomar nuestra fe cristiana. En especial, a la luz de las palabras de Jesús —“He venido al mundo para dar testimonio de la verdad”—, señala la importancia de reflexionar sobre la postura que adopta la iglesia de hoy ante las autoridades terrenales. El pastor David Jang suele hablar del concepto de “la autoridad real de la verdad de Jesús”, no con la intención de enfrentar o contraponerse a los poderes del mundo, sino con la intención de reconocer la condición de Jesús como “Rey que da vida” a una humanidad corrompida por el pecado, la muerte y el engaño. Quienes no pertenecen a la verdad no pueden escuchar la voz de Jesús y, por ende, acaban sometiéndose o aprovechándose del poder mundano para satisfacer sus propias ambiciones. En cambio, quienes sí pertenecen a la verdad, es decir, aquellos que reconocen a Jesús como Rey, deben imitar la actitud de Cristo, quien “siendo Su Reino diferente al de este mundo, se encarnó en él para proclamar la verdad”.
Así, el interrogatorio ante Pilato condensa tanto la inocencia de Jesús como el proceso mediante el cual, a pesar de todo, Él aceptó el sufrimiento y se encaminó hacia la cruz para cumplir la redención. Al meditar en este pasaje, los cristianos advertimos que la verdad enseñada por Jesús —amor, perdón y certeza del Reino de Dios— es de un orden completamente distinto al de los poderosos y líderes religiosos de este mundo. Del mismo modo que el mundo no reconoció a Jesús, hoy día muchos tampoco quieren oír la verdadera voz del Evangelio e incluso lo rechazan. Aun así, Jesús se mantuvo firme proclamando la verdad hasta la muerte en la cruz. Aquella aparente locura divina fue, en realidad, el camino para la salvación de la humanidad. Por eso, la silenciosa y majestuosa actitud de Jesús ante Pilato encierra también el germen de la victoria que se vería probada con la resurrección.
En consecuencia, el interrogatorio de Pilato muestra cómo el camino del cristiano se distingue del poder terrenal. Normalmente, la autoridad del mundo se erige y perpetúa por la fuerza, la coacción, la maniobra política, el poderío militar o el económico, como lo ilustra el Imperio romano en tiempos de Jesús. Pero el “Reino de Dios” que manifiesta Jesús aparenta ser débil y fracasar, llegando incluso a la ignominia de la cruz, si bien allí se revela la fuerza del poder de la resurrección y de la vida eterna. Y eso es precisamente lo que Juan destaca como la “autoridad real de la verdad” de Jesús.
2. La tensión entre los poderes del mundo y el Reino de Dios
La afirmación de Jesús: “Mi reino no es de este mundo” (Jn 18:36) ha suscitado a lo largo de la historia múltiples interpretaciones y debates. En ciertas épocas, se utilizó este pasaje para justificar una separación radical entre la Iglesia y el mundo. En otras, algunos interpretaron que transformar políticamente las estructuras de la sociedad equivale a la expansión del Reino de Dios y abogaron por la participación activa en política y economía. Sin embargo, en el contexto de este relato, la frase “Mi reino no es de este mundo” significa que Jesús se presenta como un rey que trasciende los intereses políticos de Pilato y las concepciones religiosas de los líderes judíos. Los objetivos y métodos de Jesús se fundamentan en una verdad que el mundo no puede comprender ni imitar. Los poderes de este mundo suelen instrumentalizar la religión y la verdad para beneficio propio, mientras que Jesús declara: “Todo aquel que es de la verdad, oye mi voz”, subrayando que esta verdad no se relaciona con la posición social o la influencia de una persona.
La tensión entre la verdad y el poder terrenal se muestra en todo el Evangelio. Jesús, durante su ministerio, se enfrentó continuamente a la autoridad religiosa y, al final, pasó por el juicio del poder secular representado en Pilato, que lo condenó a morir crucificado. No obstante, de forma paradójica, Pilato —quien lo sentenció— confiesa hasta en tres ocasiones que no hallaba falta alguna en Él. Así se demuestra que, aun en el tribunal de un gobernador romano, la pureza y la inocencia de Jesús se hacen evidentes. Aun así, Jesús no se defendió mediante maniobras políticas o el uso de la violencia, sino que permaneció en silencio, soportando el azote y la burla. De esta forma, se destaca la naturaleza totalmente distinta del reinado de Jesús, que no persigue imponer su poder con estrategias mundanas.
¿Por qué los líderes judíos y la multitud insistieron tanto en matar a Jesús? Porque Él desenmascaró su hipocresía y su abuso de poder, así como las estructuras opresoras del templo. Ante los ojos de esos dirigentes, Jesús era una amenaza para su estatus y su autoridad religiosa. Resolvieron entonces recurrir a la calumnia —“Él se rebela contra Roma”— y a la presión multitudinaria ante Pilato para forzar una sentencia de crucifixión. Aparentemente, decían servir a Dios con celo, pero rechazaban al verdadero Mesías y obraban en contra de Él. Todo esto confirma lo que Jesús había anunciado: que ellos no pertenecían a la verdad y, por ende, no podían reconocerla. Pilato, aun preguntándose “¿Qué es la verdad?”, tenía ante sí a la Verdad encarnada, pero no la supo —o no la quiso— identificar. Por su parte, Jesús asumió, por encima de toda la maldad humana, el plan salvador del Padre, dirigiéndose libremente a la cruz.
Esta escena ha generado debates en torno a la responsabilidad última de la muerte de Jesús, discutiendo la culpa de Pilato y de los líderes judíos. Pero los Evangelios muestran que la muerte de Jesús no fue el resultado de una conspiración meramente humana, sino parte del plan de redención para expiar los pecados de la humanidad. Jesús, aun siendo inocente, murió para cargar con la culpa de los pecadores y abrirles un camino de salvación. Pilato y los líderes judíos se convirtieron en instrumentos de ese plan, sin que ello signifique que queden exentos de culpabilidad. En realidad, todos los seres humanos compartimos el mismo pecado que crucificó a Jesús: nuestros propios intereses, temores y maldad contribuyen a rechazar a Dios.
El pastor David Jang enfatiza la importancia de aplicar las reflexiones que surgen de la confrontación entre Jesús y Pilato a la vida de la Iglesia y de los creyentes de hoy. Según su enseñanza, Jesús sigue “dando testimonio de la verdad”, pero la cuestión es si la Iglesia y los cristianos se alinean con esa verdad o si, por el contrario, se acomodan a los poderes terrenales y la ignoran. Existe el riesgo de que en la Iglesia se repitan actitudes similares a las de los líderes judíos, quienes rechazaron a Jesús para proteger sus privilegios y su comodidad, aunque presumían de religión. Cuando los intereses materiales, el prestigio institucional o el deseo de conservar el poder eclesiástico eclipsan la esencia del Evangelio, se acaba rechazando la verdad de la cruz, a la vez que se mantiene una apariencia de religiosidad. El pastor David Jang advierte a la Iglesia sobre este peligro y recalca que “la autoridad de la verdad de Jesús” no es para derrocar violentamente al mundo, sino para amar, servir y salvar a los pecadores sumidos en las tinieblas.
La elección de liberar a Barrabás en lugar de a Jesús también dice mucho sobre la sociedad. En ocasiones, los grupos multitudinarios se sienten atraídos por figuras que prometen cambios bruscos y violentos, pues esas acciones radicales pueden despertar un sentimiento de venganza o de “justicia” distorsionada. Barrabás, como agitador de revueltas y asesino, podía prometer una sublevación contra Roma, algo que a muchos les parecía más “práctico” para saciar su enojo. Pero Jesús no transforma el mundo por la fuerza de las armas. El Reino del que Él es Rey consiste en el gobierno del Padre que llega mediante el poder del Espíritu Santo. En la cruz, la imagen de Jesús parece derrotada y humillada; sin embargo, con la resurrección se revela el Rey que triunfa sobre la muerte. Quienes permanecen en Jesús están llamados a transitar un camino distinto al de la mayoría. El pastor David Jang, al mencionar constantemente este tema, hace referencia a las palabras del apóstol Pablo: “Porque nuestra lucha no es contra sangre y carne, sino contra principados, contra potestades, contra los gobernantes de las tinieblas de este mundo” (Ef 6:12). El Reino de Dios no se establece mediante rivalidades políticas o conquistas militares, sino mediante el poder del Espíritu y la práctica del amor y la verdad.
Ahora bien, “Mi reino no es de este mundo” no significa que los cristianos deban aislarse por completo de la sociedad. En otros pasajes de Juan, Jesús ora por Sus discípulos diciendo: “No ruego que los quites del mundo, sino que los guardes del mal” (Jn 17:15). Esto expresa que debemos vivir en el mundo, pero sin contaminarnos con los valores de este. Asimismo, declara: “Como me envió el Padre, así también yo os envío a vosotros” (Jn 20:21). Es decir, los creyentes, como ciudadanos del Reino de Dios, somos enviados al mundo para anunciar el Evangelio y difundir la luz de la verdad. El pastor David Jang insiste en que si los discípulos de Jesús se refugiaran en una burbuja apartada de la sociedad, la obra de la cruz quedaría desvirtuada. Debemos vivir en santidad y separados del mal, pero a la vez hemos de cumplir la misión de proclamar la verdad y el amor divino en medio de la sociedad.
No obstante, reconocer y aferrarse a la verdad puede resultar muy difícil, pese a que parezca algo obvio para la Iglesia. Los dirigentes judíos se jactaban de cumplir la Ley de Dios y de esperar al Mesías, pero no lo reconocieron al tenerlo frente a sus ojos. Es más, lo atacaron, lo calumniaron y lo condenaron. Porque la verdad que Jesús proclamaba sacaba a la luz su hipocresía y su corrupción. Lo mismo puede ocurrir hoy. Cuando la Iglesia se instala en un simple ritualismo, se deja seducir por las ventajas mundanas y no vive conforme al Evangelio de la cruz, corre el riesgo de volverse insensible a la voz de Jesús. Entonces, repetiremos la postura de Pilato, preguntando “¿Qué es la verdad?” y pasando por alto que la Verdad está frente a nosotros.
Por ello, el pastor David Jang hace un llamado a la Iglesia a examinarse continuamente y regresar a la esencia del Evangelio. El interrogatorio de Jesús ante Pilato nos confronta con la pregunta: “¿A qué rey pertenecemos?”. Si nos dejamos llevar por la influencia, la fama, la ambición económica o la comodidad, podemos terminar ignorando la voz del verdadero Rey. ¿Comprendemos de veras el modo en que Jesús ejerce Su reinado aquí en la tierra? El pastor David Jang subraya que el centro de la verdad está en la cruz, manifestando amor y obediencia. El Reino se expande no por maniobras o fuerza, sino a través del sacrificio voluntario, del servicio y de la obra del Espíritu Santo. En esto radica la diferencia fundamental con quienes, como Barrabás, pretendían derrocar el orden establecido mediante la violencia.
En el presente, para un cristiano, imitar a Jesús ante el tribunal de Pilato implica la disposición a sufrir el menosprecio, la burla e incluso acusaciones falsas. Significa, además, permanecer fiel a la voluntad del Padre y a la verdad y el amor, tal como hizo Jesús. Cuando los poderes de este mundo pregunten “¿Cuál es vuestro reino?” o “¿Quién es vuestro Rey?”, el creyente deberá responder con valentía y claridad: “Mi reino no es de este mundo. Reconozco a Jesucristo como el Rey de la Verdad”. Y esta confesión no debe quedarse en palabras; debe reflejarse en una vida marcada por la humildad, la mansedumbre, el amor y el sacrificio, tal como lo enseñó Jesús.
El pastor David Jang también destaca el aspecto sustitutivo de la pasión de Jesús en el interrogatorio de Pilato. Jesús fue declarado inocente hasta por el propio Pilato, nunca cometió pecado. Sin embargo, murió en la cruz para que nosotros, culpables ante Dios, fuésemos liberados de la condena. Si Jesús hubiera sido culpable de algo, la cruz no tendría un carácter expiatorio. Pero al ser totalmente inocente y aun así recibir la sentencia de muerte, cargó con nuestro pecado para otorgarnos salvación. Esta realidad demuestra el amor extraordinario de Dios y la entrega absoluta de Cristo encarnado. David Jang explica con frecuencia que “Jesús compareció ante el tribunal terrenal en lugar nuestro, para que nosotros no fuéramos juzgados por el pecado”. Ser cristiano significa creer y acoger ese amor, y vivir de la misma manera: sirviendo y amando, en obediencia al Padre.
Quizá hoy no enfrentemos un interrogatorio político como el de Pilato, pero a diario nos vemos expuestos a presiones y tentaciones que nos incitan a apartarnos de la verdad para buscar beneficio propio. En nuestros trabajos, escuelas o situaciones cotidianas, se nos invita a falsificar, corromper o pisotear al más débil para avanzar. Allí es donde el cristiano debe rechazar las prácticas del mundo y optar por la verdad de Jesús, aun si eso trae desprecio o sufrimiento. Seguir el camino de la cruz no es sencillo, pero al final está la victoria de la resurrección y la participación en la gloria del Reino de Dios. El pastor David Jang subraya: “Si el mundo grita que Jesús no es Rey y que la verdad no existe, perseverar en la verdad conllevará un costo. Pero en esa senda de fe, participaremos en la vida eterna y en el triunfo de Cristo resucitado”.
Además, debemos reconocer que los comportamientos de Pilato y los líderes religiosos podrían reproducirse dentro de la propia Iglesia. Es posible que una comunidad eclesial se concentre en servicios espectaculares, proyectos ostentosos o en crecer numéricamente, descuidando la verdad y el amor. Entonces, aunque en lo externo repita “Señor, Señor” (Mt 7:21), en la práctica puede estar crucificando de nuevo a Jesús. Eso es algo verdaderamente grave. Pilato oyó que Jesús venía “a dar testimonio de la verdad” y, pese a tener la intención de liberarlo, sucumbió a los gritos del populacho y a sus cálculos políticos, sellando el destino de Jesús. Los líderes judíos se jactaban de cumplir con meticulosidad la Ley, pero ignoraron el auténtico corazón de Dios revelado por Jesús.
Esta historia explica cómo funciona la injusticia del poder en el mundo, cómo se rechaza la verdad y cómo la hipocresía religiosa puede aliarse con el poder para crucificar al justo. A la vez, muestra la manera en que Jesús encarna plenamente la verdad y el amor, abrazando la cruz para llevar a cabo la salvación. El pastor David Jang sostiene que debemos tener presente que “cada día comparecemos, en cierto sentido, ante la pregunta de Pilato”. “¿Qué es la verdad?”, “¿A cuál rey perteneces?”. El cristiano debe responder: “Pertenezco a la verdad; escucho y sigo la voz de Jesús, quien es mi Rey”. Y esa respuesta debe manifestarse en la práctica diaria, tanto en la iglesia como en la sociedad, mediante acciones concretas de amor y obediencia a la verdad.
Al contemplar el interrogatorio de Pilato, somos testigos de la inocencia de Jesús y de su realeza cimentada en la verdad. Observamos, asimismo, cómo los líderes judíos y Pilato, empujados por el engaño, el temor y la codicia, lo llevan a la cruz. Sin embargo, constatamos que la cruz era el medio divino para nuestra redención. Jesús muere crucificado, mas al resucitar vence la muerte y establece el Reino eterno de Dios, revelando que Él es el Rey verdadero. Aquellos que lo reconocen como Rey se adentran en la verdad que Pilato no pudo comprender, y participan de la vida que vence al pecado y a la muerte.
Para el creyente, este pasaje de Juan subraya la identidad de “estar en el mundo sin ser del mundo”. El pastor David Jang reitera que Cristo sigue dando testimonio de la verdad, pero muchos todavía preguntan “¿Qué es la verdad?” sin acercarse al Jesús que tienen frente a ellos. Y, lamentablemente, a veces la Iglesia se alía con el poder terrenal y rechaza a Jesús, tal como hicieron los antiguos líderes judíos. Por lo tanto, debemos caminar cada día en la Palabra y en el Espíritu, testificando con firmeza: “Mi reino no es de este mundo”. Esto no implica huir del mundo, sino ejercer la ciudadanía del cielo sin dejarnos doblegar por sus valores. Al contrario, estamos llamados a iluminar al mundo con el Evangelio, fomentando una verdadera transformación.
Finalmente, el interrogatorio ante Pilato constituye el momento en que Jesús mismo declara que es el Rey de la Verdad, mientras Pilato y los líderes judíos rechazan esa verdad, quedando al descubierto su propio pecado. Y, sin embargo, esa cruz, que representa el rechazo y la muerte de Jesús, fue el instrumento divino para concretar el plan de salvación. Hoy, gracias a la muerte y resurrección de Cristo, comprendemos que solo aquellos que le pertenecen a Él, la Verdad, pueden hallar la libertad y la vida. Por tanto, aferrémonos a las palabras de Jesús: “Todo aquel que es de la verdad, oye mi voz”, y, tal como insta el pastor David Jang, proclamemos con nuestra vida que Jesús es el Rey. Sigamos Su ejemplo de mansedumbre y obediencia para proclamar el Evangelio en medio de este mundo. De esa manera, ayudaremos a que muchos dejen de preguntarse en vano “¿Qué es la verdad?”, y descubran finalmente que la Verdad es Jesucristo. Esa es la poderosa enseñanza y el desafío que recibimos hoy al contemplar este pasaje del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으실 때의 상황은 복음서 중 요한복음 18장 후반부부터 19장 초반부에 걸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부분, 즉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직전의 재판 과정에서 벌어진 극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이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신 이후 대제사장들과 유대인의 종교재판을 거쳐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 서신 모습을 묘사한다. 특히 빌라도의 심문 과정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말씀과 태도, 그리고 빌라도가 이를 접수하고 반응하는 태도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극적으로 보여 준다. 동시에 유대인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이 가진 죄성, 그리고 무리들의 악한 집단 심리가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를 낱낱이 폭로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 설 당시 이미 종교지도자들에게 잡혀 밤샘 신문을 당하셨고,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한다는 신성 모독죄를 뒤집어쓰신 상태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종교적 관습 혹은 법으로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수 없었기에(요 18:31)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사형 판결을 받아 내려고 그를 끌고 간다. 빌라도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을 다스리는 자였으므로, 유대 땅에서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려면 그의 허락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때 빌라도가 예수님을 처음 대면하고 묻는 것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질문이다(요 18:33). 유대 지도층이 예수님을 고소한 죄목이 ‘유대인의 왕을 자처함으로써 로마에 대항하는 반역자’라는 식으로 변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자신이 이 세상의 왕, 곧 현세적 정치 권력으로서의 왕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 18:36)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로마의 제도나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정치적 구조 안에서 왕위를 차지하려거나 무력으로 통치권을 잡으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하신다. 이는 빌라도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진술이었다. 로마 총독으로서 그가 가장 경계하는 인물은 반역자, 즉 로마 제국에 해를 끼칠 정치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왕국은 빌라도가 속해 있는 정치 질서나 세속적 권세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예수님의 나라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 곧 진리와 사랑의 통치가 실현되는 영역이다. 현세의 정치나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구원과 영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나라이자 왕권이 임하는 곳이다. 둘째,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개념에만 사로잡혀 예수님을 반역자로 규정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예수님께서 미리 차단하셨다는 점이다. 빌라도 입장에서는 “만일 예수라는 사람이 실제로 정치적 반역을 꿈꾸는 인물이라면, 그의 제자들이 로마 군사들과 맞서 싸웠을 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예수님의 설명에 어느 정도 설득이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요 18:36). 이는 로마에 반역하지 않았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이중의 의미를 내포한다. 즉, 예수님의 나라는 폭력을 통해 유지되거나 확장되는 세상 왕국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그나마 빌라도가 우려할 만한 정치적 반역자의 이미지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을 선포하신 셈이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발언에 대해 빌라도는 다시금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요 18:37)라고 묻는다. 이는 “정말로 너는 왕적 권세를 가진 자라고 스스로 확신하느냐?”라는 질문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말하는 ‘다른 세계의 왕국’이 정확히 어떤 성격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예수님 안에서 어떤 정치범의 모습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권위와 진리가 드러남을 감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예수님의 대답은 다시 한 번 요점이 분명하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18:37) 여기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자신이 곧 진리임을 선포하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진리에 대한 증거”임을 다시 못 박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진리를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진리에 속한 자”라는 표현으로 제시하셨다.
‘진리에 속한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씀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영적 원리를 담고 있다. 즉,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고, 아무리 종교적 직위가 높다 하더라도, 혹은 아무리 정치적으로 막강한 권세를 가졌다 하더라도 진리를 모르면 예수님의 음성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진실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마음이 열리고, 겸손히 진리를 찾고자 하는 자라면 로마의 총독이나 갈릴리 변두리에 사는 사람이나 누구라도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말씀을 ‘왕이신 분의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 발언에 대해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라고 되묻고, 더 이상 예수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는 점이 요한복음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 빌라도가 이미 진리에 관심이 없는 자, 혹은 진리를 들을 여유가 없는 정치가였음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후 빌라도는 유대인 무리들에게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다”(요 18:38)라고 두 차례나 선언한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사형에 처해야 할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빌라도는 예수님의 말을 직접 들으면서, ‘이 사람은 정치적 반역자가 아니라 뭔가 존엄하고 순결해 보인다’라는 인상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공언한 사실 자체가 곧 그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유대인 지도자들과 무리는 집요하게 예수님의 처형을 요구했고, 예수님 대신 극악무도한 죄인 바라바를 풀어 달라는 요구까지 했다(요 18:40). 바라바는 강도요 민란의 선동자요 살인자였다(막 15:7; 눅23:19; 행 3:14). 로마 입장에서는 명백한 사형 대상이었을 정도의 흉악범이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빌라도를 압박함으로써, 예수님을 죽이는 방향으로 재판이 흐르도록 집단적 선동을 지속했다.
빌라도는 자신이 예수님을 무죄로 풀어주고 싶어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군중의 압박과 정치적 사정, 그리고 “이 사람을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다”(요 19:12)라는 위협에 흔들리고 만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주기 전, 채찍질이라도 심하게 해서 무리의 분노를 달래려는 시도를 한다(요 19:1). 그러고는 가시나무로 엮은 관을 예수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도록 하여 조롱당하게 만들었다(요 19:2–3). 빌라도가 이를 통해 백성들의 분이 풀리고 예수님을 살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무리는 더욱 크게 예수님을 못 박으라고 외치게 된다.
결국 빌라도의 심문은 세상 권세자의 눈에도 예수님께 죄가 없음을 드러내는 과정이 되었으나, 동시에 그 무죄하신 주님이 결국 인간의 악의와 종교적 위선, 정치적 타협 속에서 사형 언도를 받으시는 역설을 보여 준다. 빌라도 자신도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며 세 번이나 선언했지만(요 18:38, 19:4, 19:6 참조), 결국 십자가 형을 선고한다. 요한은 이 과정을 통해 예수님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셨으며, 동시에 이 죽음이 단순한 억울함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 있음을 보여 주고자 했다.
이렇게 요한복음에 기록된 빌라도의 심문 장면을 통해 드러나는 핵심 메시지는, 첫째로 예수님이 죄가 없으셨다는 사실이다. 로마 총독조차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고백하게 되는 극적 대치를 통해, 예수님의 결백이 역사적으로 증명된다. 둘째로, 예수님은 정치적 반역자나 세상적인 왕이 아니라, 진리의 왕이며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이시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주님의 말씀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이 어디에 근거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셋째로, 진리가 오히려 거짓된 종교권력과 정치적 야합에 의해 배척당하는 역설이 드러난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신봉하며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했으나, 정작 그 메시아가 오시자 스스로의 종교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처형하는 데에 앞장선다. 이처럼 이 장면은 ‘진리가 나타날 때 오히려 거짓과 위선이 폭로되고 심판을 받는다’는 진리를 단적으로 시각화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에서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본질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자세를 깊이 묵상해야 함을 강조한다. 특히 예수님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왔다”라고 하신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 권세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장재형목사는 “예수님의 진리의 왕권”이라는 개념을 자주 이야기하는데, 이는 세상 권력과 충돌하거나 맞서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과 거짓에 물든 인류에게‘생명을 주시는 통치자’로 오신 예수님의 위치를 인식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진리에 속하지 않은 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결국 세상 권세에 굴복하거나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진리에 속한 자들, 즉 참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이 보여 주신 모습, 곧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하지 않으나 세상 속에 임하여 진리를 선포하는 것”을 본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빌라도의 심문 장면은 예수님의 무죄와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아들이시며 십자가에 이르시는 구속의 길을 걷게 되시는 과정을 함축적으로 담아낸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본문을 묵상할 때,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리, 곧 사랑과 용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이 현세적 권세자나 종교적 기득권자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세상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듯, 오늘날도 진리에 속하지 않은 수많은 이들이 참된 복음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거나, 심지어 배척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진리를 선포하시고, 그 진리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 이 어리석어 보이는 하나님의 방식이야말로 인간의 구원을 위한 길이었다. 따라서 빌라도 앞에 선 예수님의 장엄하고도 온유한 모습은, 훗날 부활을 통해 입증될 승리의 싹이 숨겨져 있었던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빌라도의 심문은 그리스도인의 길이 세상 권세와 어떻게 구별되는가를 보여 준다. 세상의 왕권은 주로 폭력이나 위압, 정치적 책략, 군사력, 경제력으로 이룩되고 유지된다. 예수님 시대의 로마제국이 대표적이다. 반면 예수님이 보여 주신‘하나님의 나라’는 겉으로는 아무 힘이 없어 보이고, 십자가처럼 치욕적인 처형 도구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부활과 영생의 능력이 선포되고 참 자유가 주어진다. 이 점이 바로 요한이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예수님의 ‘진리의 왕권’이다.
2.세상 권세와 하나님 나라의 긴장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하신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요 18:36)라는 말씀은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해석과 적용을 낳았다. 어떤 시기에는 이 구절이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완전히 분리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다. 반면 또 어떤 이들은 세상의 정치·경제·문화 영역을 변혁하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며, 적극적인 참여와 개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문의 문맥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정치적 관심사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틀에 제한되지 않는 차원의 통치자이심을 선언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목적과 방법은 세상이 이해하거나 흉내 낼 수 없는 진리에 기반한다. 세상 권세자들은 이 진리를 통치의 수단으로 삼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이익과 욕망을 관철하기 위해 사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진리에 속한 자들만이 내 음성을 듣는다”라고 단언하심으로써, 이 진리가 사람들의 표면적 지위나 능력과 무관함을 밝혀 주셨다.
이 진리와 세상 권세의 긴장은 복음서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종교권력과 끊임없이 충돌하셨고, 결국 빌라도라는 세속 권력자의 재판정을 거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실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선고한 빌라도는 재판 과정에서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세 번이나 고백했다. 이는 곧 세상 권세조차 예수님의 무죄함과 순결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정치적 책략이나 무력 동원으로 자신을 보호하거나 빌라도에 맞서지 않으셨으며, 침묵 가운데 채찍질과 모욕을 감내하셨다. 이러한 모습에서,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왕권이 세상 권위자들이 추구하는 힘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점이 극명하게 부각된다.
유대인 지도자들과 무리는 왜 그렇게까지 예수님을 죽이려 했을까? 성전 체계를 뒤흔들고, 그들의 종교적 위선과 권위주의적 행태를 폭로하셨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님은 사람들을 억압하거나 가르치는 이들의 위선을 낱낱이 드러내셨다. 이로 인해 종교권력자들은 예수님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빌라도에게“예수는 로마에 반역하는 자”라고 모함하며, 십자가형을 선고하도록 집단적 압박을 가했다. 이는 겉으로 종교의 열심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메시아를 배척하는 모습이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빌라도에게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었지만, 정작 자신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대면하고도 알아보지 못하거나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인간의 악을 넘어서는 구원의 계획을 품고 십자가에 이르신다.
이 장면을 두고 많은 신학자들이, 빌라도의 궁극적 책임과 유대인 지도자들의 책임은 각각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를 논의해 왔다. 누가 정말 예수님을 죽였나? 사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한 종교적·정치적 음모나 법정 재판의 결과만이 아니라, 인간 죄악 전체를 대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작정된 구속 사역이라고 증언한다. 예수님께서 정말 죄가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죗값을 지고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빌라도와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이 구속 역사를 이루는 데에 도구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죄책을 면제해 주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과 이익, 두려움 등으로 인해 정말로 ‘무죄하신 이’를 죽인 죄를 범했다. 동시에 이는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지닌 죄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곧 누구라도 자신이 지닌 악함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동참한 셈이다.
장재형(장다윗)목사는 빌라도와 예수님, 그리고 유대인 무리 사이에서 벌어진 이 논쟁과 심문의 과정을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적용해 보아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의 메시지에 따르면, 예수님은 지금도 ‘진리에 대해 증언’하기를 멈추지 않으신다. 문제는 교회가 혹은 성도들이 진리에 속하느냐, 아니면 세상 권세와 야합하며 진리를 외면하느냐이다. 과거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와 욕심을 위해 예수님을 배척했던 모습은, 현대 교회 안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곧 인간적 명예나 재산, 교권, 혹은 사회적 지위 등을 잃지 않으려고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고, 십자가의 도를 부인하면서도 겉으로만 종교적 열심을 표방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점을 매우 경계하며, “예수님이 보여 주신 진리의 권세는 세상을 전복시키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죄인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구원하는 것”임을 수차례 강조한다.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몬 군중의 선택 또한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들은 때때로 폭력을 휘두르고 현실의 정치나 사회체제를 뒤집으려는 극단적 인물을 통해, 자신들의 울분을 해소하고 욕망을 투영하기도 한다. 바라바 같은 민란의 선동자는 때로 군중에게 통쾌함을 줄 수도 있으며, “이제 로마를 뒤엎고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체제를 세워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폭력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으신다. 주님이 왕으로 오신 나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통치가 성령의 능력으로 임하는 나라다.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을 볼 때에는 실패한 왕처럼 보이고, 무력한 희생자처럼 보이지만, 부활 후에는 죽음을 이기신 승리의 왕으로 나타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붙어 있는 자들은 세상의 가치나 방법론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함을 암시한다. 장재형목사 또한 이를 반복해서 설교하며,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에 대한 영적 싸움이다”(엡 6:12)라는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한다. 눈에 보이는 정치적 대결이나 세력 다툼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붙들고 사랑을 실천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는 것이다.
또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완전히 분리·은둔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요한복음의 다른 곳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라고 하셨다. 이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고 주님의 진리와 성령의 능력으로 구별된 삶을 살라는 의미다.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으로 보내노라”(요 20:21)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우리가 세상 한복판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의 빛을 비추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장재형목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상을 떠나 자기들만의 영역을 만든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의미가 희석될 수 있다”고 하며, 거룩함과 구별됨을 유지하되, 동시에 세상으로 파송받아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를 증거해야 함을 역설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진리를 바로 분별하고 붙드는 일이 아무리 교회나 성도에게 당연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실제로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유대인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다”는 열심을 갖고 있었고, “메시아를 대망한다”고 공언했지만,막상 참된 메시아가 오셨을 때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적대하고 거짓으로 모함하며 죽이려 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진리가 그들이 누리던 종교적 기득권과 위선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형식적 종교생활에 안주하거나, 세속적 이익과 결탁하며, 예수님이 보여 주신 참된 진리를 실천하기보다는 자기 편한 길을 추구하면, 결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된다. 결국 빌라도처럼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질문하면서도, 눈앞에 서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재형목사는 교회가 스스로를 성찰하고, 언제나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장면은, 그리스도인을 향해 ‘우리는 과연 어느 왕에게 속해 있는가’를 묻는다. 세상의 영향력과 명예, 물질, 혹은 편리함을 좇아서 진리의 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수님이 이 땅에서 왕으로 사역하시는 방식’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사랑과 순종을 진리의 핵심으로 붙잡고 있는지를 거듭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의 나라는 무력과 획책이 아닌, 자발적 희생과 봉사,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확장된다. 그것이 제국의 힘이나 군중심리에 의존해 반역을 꿈꾸던 바라바와의 결정적 차이다.
현대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빌라도의 재판정 앞에 선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는다는 것은,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혹은 억울한 누명을 쓰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진리와 사랑을 지키는 자세를 의미한다. 동시에 세상 권세자들이 “너희가 말하는 나라는 무엇이냐?”, “너희가 말하는 왕은 누구냐?”라고 물을 때, 예수님처럼 담대하고 명확하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 진리에 속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권자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길이다. 그리고 이 고백은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예수님이 보여 주셨던 겸손과 온유, 사랑과 희생이 나타날 때에야 비로소 신뢰를 얻게 된다.
특히 장재형목사는 빌라도의 심문 장면을 가르치면서, 예수님께서 모든 죄와 거짓된 심판을 스스로 지고 감당하셨던 대속적 성격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도 무죄로 선포되었고, 단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으신 분이셨다. 그럼에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죄인인 우리가 죄에서 해방될 길을 열어 주셨다. 만약 예수님께 죄가 있었다면, 십자가가 대속의 사건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죄도 찾지 못한’ 주님이 죽으심으로, 무고한 희생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 이는 하나님의 초월적 사랑이며, 동시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이다. 장재형목사는 설교에서 “세상 권세의 심판대에 선 예수님은 사실 우리가 죄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대신 서 주신 분”이라고 자주 언급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 사랑을 믿고 받아들여, 예수님이 베풀어 주신 구원을 누리는 동시에, 그 사랑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실제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의 왕권’과 ‘세상 권세’의 충돌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까? 대개는 아주 큰 정치적 박해나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직장이나 학교, 일상 속에서 진리에 반하는 유혹이나 타협의 압력이 늘 도사린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방식대로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을 동원하거나, 약한 사람들을 밟고 올라서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또한 때때로 억울한 비난을 받더라도,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과 온유의 태도로 일관해야 한다. 이것이 쉬운 길은 아니지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이다. 장재형목사는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는 왕이 아니다, 진리가 없다’고 외치는 소리 앞에서, 예수님의 진리를 붙드는 자로 살려면 고난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그 길 끝에서 우리는 주님의 부활과 영생, 곧 하나님 나라의 영화에 동참하게 된다”고 역설한다.
나아가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도 빌라도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 재현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화려한 예배나 프로그램, 교세 확장에 몰두하면서 정작 진리와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그 교회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무리가 될 수도 있다. 겉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마 7:21), 실상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다름없는 행태를 할 수도 있다. 이는 매우 두려운 일이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러 오셨다”는 말씀을 듣고도, 자신이 가진 정치적 계산 때문에 진리가 누군지, 혹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예수님을 릴리스하려는 마음이 있었음에도 군중의 압박에 굴복해 무죄한 이를 사형에 내몬다. 예수님 당시 유대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외적으로는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드러내신 참된 하나님의 마음을 보지 못하고 거부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세상 권세의 구조 안에서 나타나는 불의와 진리에 대한 배척, 그리고 종교적 위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 주는 한편, 예수님이 그 속에서 어떻게 참된 진리와 사랑을 실천하시는지를 알려 준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통해, “우리는 날마다 빌라도의 질문 앞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물음, 그리고 “너는 과연 어느 왕에게 속해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그리스도인은 “나는 진리에 속한 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릅니다. 예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백이 삶의 방식으로 드러나야 하며, 우리가 속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또 우리가 몸담은 사회 속에서도 예수님의 진리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빌라도의 심문 장면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무죄함과 진리의 왕권을 발견한다. 그리고 유대인 지도자들과 빌라도가 거짓과 두려움, 이기심으로 인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모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죄성과 어리석음을 발견한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의 성취라는 사실을 목격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다. 이로써 참된 권세가 무엇인지, 참된 왕이 누구신지가 드러난다. 이 왕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만이 빌라도가 알지 못했던 진리를 깨닫게 되며, 죄와 사망을 이기는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본문은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정체성을 상기시키며, 진리를 전하러 오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의 삶을 드려야 한다고 촉구한다. 장재형목사가 자주 언급하듯,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으면서도 진정한 진리의 실체이신 예수님께 나아오지 못하고 있다. 교회 역시 때로는 세상 권세와 결탁하여 예수님을 배척하는 옛 유대인 지도자들처럼 변질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말씀과 성령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세상 권세 앞에서 담대히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선포해야 한다. 이것은 세상에서 떠난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에 흔들리지 않는 천국 시민으로서의 확고한 태도를 갖추는 것이며, 동시에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추어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는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빌라도의 심문 장면은 바로 예수님이 진리의 왕이심을 스스로 증언하신 사건이요, 빌라도와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를 거부하거나 알지 못함으로써 자신들의 죄를 폭로한 사건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완성하는 통로가 되었고,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진리를 알며 자유케 되는 길을 얻었다. 그러므로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장재형목사가 거듭 권면하듯 진리이신 예수님을 삶의 왕으로 모시는 신앙을 지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 왕이신 주님을 따라, 겸손히 세상 한복판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함으로써, 세상도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리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하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빌라도의 심문 장면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받은 강력한 메시지이자 과제다.
Dans les chapitres 2, 3 et 4 des Actes des Apôtres, nous voyons clairement comment l’Église primitive s’est formée et comment elle a été transformée. Au cœur de cette transformation se trouvait toujours la puissante présence du Saint-Esprit, grâce à laquelle la vie des gens fut radicalement bouleversée.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l’importance de cette action du Saint-Esprit, expliquant que l’Église primitive était remplie de la crainte du gouvernement et de la souveraineté de Dieu. En conséquence, elle vivait dans un débordement de signes et de prodiges. Il précise cependant que ces signes et prodiges ne se limitaient pas à des miracles surnaturels visibles, comme la guérison de l’homme paralysé depuis quarante ans. Ils incluaient également des changements complètement nouveaux partant du cœur humain, tels que le renoncement à la propriété et le partage.
Dans Actes 2:43 et les versets qui suivent, nous lisons que « beaucoup de prodiges et de miracles se faisaient par les apôtres », soulignant qu’à cette époque l’Église était remplie de miracles visibles. Toutefois, le pasteur David Jang insiste sur le fait qu’au-delà de ces extraordinaires manifestations visibles, il faut accorder une attention particulière au changement fondamental par lequel les croyants renonçaient à leurs biens et vivaient dans le « dépouillement ». Le fait que les croyants « mettaient tout en commun et vendaient leurs propriétés et leurs biens pour en distribuer le prix à tous, selon les besoins de chacun » montrait l’action extraordinaire de la grâce, qui, grâce à la présence du Saint-Esprit, libérait l’homme de sa convoitise et de son avidité enfouies au plus profond de lui.
Le passage d’Actes 3:6, où Pierre déclare à l’infirme assis devant la Belle Porte du temple : « Je n’ai ni argent ni or, mais ce que j’ai, je te le donne », et le relève, symbolise la véritable richesse de la vie des premiers chrétiens. Même s’ils n’avaient pas « d’argent ni d’or », ils possédaient l’abondance de la foi, issue d’une confiance totale en la puissance du Saint-Esprit et au règne de Dieu. Pour David Jang, ce verset nous rappelle la véritable « richesse » que nous devons rechercher. Les croyants de l’Église primitive ne considéraient pas leurs possessions comme un absolu ; ils voyaient tout ce qu’ils possédaient comme un don de Dieu, qu’ils avaient à cœur de partager avec leurs frères et sœurs, tout comme ils désiraient partager la plénitude de l’Esprit qui habitait en eux. C’est à partir de cette conscience que le bien matériel n’était pas « tout » qu’est née la liberté fondamentale et la vitalité de l’Église primitive.
En outre, au chapitre 4 des Actes, l’expansion rapide de l’Église et la persistance des signes et des prodiges entraînent des persécutions extérieures et exigent, en interne, une vie de prière plus intense. Le fait que les croyants se rassemblaient pour rompre le pain, chanter des louanges et prier ensemble démontre que l’énergie ultime de l’Église ne provenait ni de l’enthousiasme purement humain ni d’une simple exaltation, mais bien de la direction puissante du Saint-Esprit. À ce sujet, David Jang souligne l’importance de la « foi en la résurrection ». En effet, la résurrection du Seigneur, qui a vaincu la mort, représente le fondement ultime de l’espérance humaine. Si la puissance du Christ, vainqueur de la mort, se manifeste encore aujourd’hui au travers de l’Église et dans la vie des croyants, alors aucune peur ne saurait subsister. C’est le sens profond de l’enseignement de David Jang.
Lorsque l’Église primitive expérimentait concrètement la foi en la résurrection et recevait la puissance du Saint-Esprit, ses membres avaient la certitude que le règne de Dieu se réalisait réellement parmi eux. Cette certitude fut l’élément déclencheur qui renversa leur mode de vie individualiste et centré sur soi, leur permettant de se consacrer les uns aux autres et de se délester volontairement de leurs possessions. Les gens commencèrent à mettre leurs biens en commun pour pourvoir aux besoins de chacun. Plutôt que de s’attacher à l’argent et à l’or, ils trouvaient leur joie dans le fait de tout offrir pour le Royaume de Dieu. C’est sur ce point que David Jang insiste, rappelant l’extraordinaire dynamisme de l’Église primitive. Il est généralement admis qu’il est difficile de donner ou de partager ses biens, car l’attachement aux possessions est un trait universel qui a dominé les hommes dans tous les siècles. Pourtant, l’Église primitive a su surmonter cet obstacle grâce à la « plénitude de l’action du Saint-Esprit ».
Actes 4:32 et les versets suivants mettent en lumière la figure de Barnabas. Ce Lévite « vendit un champ, apporta l’argent et le déposa aux pieds des apôtres ». Nous pouvons imaginer le courage et l’audace d’un tel acte à l’époque. Selon David Jang, la consécration de Barnabas illustre bien l’esprit de l’Église primitive. Il ne s’est pas contenté de donner une propriété, mais il a proclamé que sa personne tout entière appartenait à Dieu. C’est seulement à partir de cette confession que le « vrai partage » peut avoir lieu. Par ailleurs, le sens même du nom Barnabas, « fils de la consolation » (ou fils d’exhortation), est très significatif. Dans l’Ancien Testament, plus précisément en Ésaïe 40, Dieu ordonne : « Consolez, consolez mon peuple ». La vie de Barnabas manifeste précisément l’accomplissement de cette prophétie. Il témoigne que la libération du péché et la fin de l’oppression, annoncées par les prophètes de l’Ancien Testament, se réalisaient concrètement dans l’Église primitive, par son geste de consécration.
Dans l’ensemble de ce contexte, David Jang conclut que l’Église primitive n’est pas simplement un « idéal du passé », mais la véritable identité que l’Église actuelle doit retrouver. Par essence, l’Église est une communauté où l’on partage volontairement le pouvoir et les biens matériels, où l’on vit les uns pour les autres et pourvoit aux besoins mutuels. La plus grande vision qui animait alors les croyants reposait sur la foi hardie enracinée dans la résurrection de Jésus-Christ, foi dont la mise en pratique dans la vie quotidienne ne pouvait qu’étonner le monde par la manifestation de miracles et de prodiges.
2. Le dépouillement de la propriété et le partage
L’une des caractéristiques les plus marquantes de l’Église primitive est le « dépouillement de la propriété ». Les croyants, remplis du Saint-Esprit, commencèrent à renoncer à leurs possessions, ne considérant plus leurs biens et leurs richesses comme leur propriété personnelle. Le verset d’Actes 4:32 – « La multitude de ceux qui avaient cru n’était qu’un cœur et qu’une âme ; nul ne disait que ses biens lui appartinssent en propre, mais tout était commun entre eux » – illustre parfaitement la nature de la communauté ecclésiale. David Jang attire l’attention sur l’expression « la propriété est surmontée ». Au long de l’histoire humaine, l’avidité de posséder est sans doute à l’origine de la plupart des problèmes : individualisme, égoïsme, guerres, conflits, exploitation, inégalités, injustice, etc., découlent souvent de la convoitise et de la soif de propriété. Cependant, par l’action du Saint-Esprit, l’Église primitive a commencé à mettre en pratique un amour et un partage qui transcendaient la propriété, comme un avant-goût du jardin d’Éden restauré. C’est un signe révélateur de la nature profonde de l’Église.
David Jang appelle cela la « mise en commun ». Mais la mise en commun véritable ne consiste pas simplement à répartir équitablement les biens matériels ou à interdire toute forme de possession par une institution stricte. Elle implique d’abord et avant tout que, dans leur for intérieur, les croyants arrivent à cette conviction : « Tout cela n’est pas l’essentiel ». En d’autres termes, ils reconnaissent que Dieu est le véritable Maître, et que tout ce dont ils jouissent Lui appartient. Puis, lorsque cette conviction devient concrète dans leur vie, ils peuvent « lâcher prise » de tout ce qu’ils s’obstinaient à considérer comme « leur bien ». Ils parviennent alors à un cœur assez large pour partager sans réserve ce qu’ils possèdent. C’est ce que David Jang appelle la « richesse spirituelle » qu’a expérimentée l’Église primitive.
Dans Actes 4:34 et les versets qui suivent, il est écrit : « Il n’y avait parmi eux aucun indigent ». Autrement dit, il n’y avait pas de pauvres au sein de la communauté. Les croyants vendaient maisons et champs, apportaient l’argent et le déposaient aux pieds des apôtres, qui le distribuaient à chacun selon ses besoins. Historiquement, c’est l’une des démonstrations d’amour les plus frappantes de l’Église primitive. David Jang explique que, du point de vue humain, un tel acte peut sembler impossible. Mais il devint possible parce que les croyants, ayant rencontré le Christ ressuscité et comblés de la grâce du Saint-Esprit, étaient persuadés d’« avoir déjà tout reçu ». Ils n’avaient plus à conserver jalousement leurs biens ou à trembler d’insécurité pour leur avenir. Ils avaient la certitude que Dieu prendrait soin d’eux et de leur futur.
Bien entendu, cela ne signifie pas que toutes les Églises soient tenues d’instituer aujourd’hui un même système de partage des biens. Selon le récit des Actes, c’est en toute liberté que chaque croyant gérait ses biens et en faisait don, et la communauté distribuait « à chacun selon ses besoins ». L’Église primitive ne contraignait pas ses membres à donner par la force ou la pression. La vente par Barnabas de son champ, suivie du dépôt de l’argent aux pieds des apôtres, illustre parfaitement cette spontanéité. Selon David Jang, la « spontanéité » est précisément la preuve tangible de la communauté régie par le Saint-Esprit. Si l’on fait une offrande sous la contrainte ou à contrecœur, ce n’est pas la manifestation de la véritable Église. L’Église primitive avançait uniquement sous la conduite du Saint-Esprit, et par conséquent, l’amour et la consécration débordaient en toute liberté. Voilà, selon David Jang, la forme authentique de communauté où « la propriété est surmontée ».
Le pasteur David Jang exhorte l’Église moderne à imiter la pratique de l’Église primitive. Notre époque est imprégnée d’individualisme et de matérialisme. Le désir instinctif de posséder davantage, la pression liée à une compétition effrénée pour surpasser les autres en matière de ressources et de niveau de vie, pèsent lourdement. Si l’Église se contente de suivre le courant de ce monde, elle perdra de vue l’idéal de l’Église primitive : l’amour et le partage, et la priorité accordée à la richesse spirituelle plutôt qu’à l’abondance matérielle. Par conséquent, si les Églises aujourd’hui aspirent réellement à un renouvellement et à une réforme, elles doivent porter à nouveau leur regard sur la valeur du « dépouillement de la propriété et du partage » que David Jang met en avant. En effet, lorsque nous sommes réellement saisis par le Saint-Esprit, la propriété cesse de nous dominer, et nous pouvons alors offrir nos biens là où ils sont nécessaires, dans une totale liberté.
Par ailleurs, il importe de souligner que l’Église primitive ne niait pas la « réalité des besoins » ni ne l’ignorait. Dans les Actes, le partage se fait « selon le besoin de chacun ». Les frères et sœurs véritablement démunis recevaient une aide adaptée à leur situation, tandis que ceux qui en avaient moins besoin n’en recevaient pas autant. Ainsi, le partage et la mise en commun se fondaient sur les besoins réels. Voilà pourquoi le partage pratiqué par l’Église primitive ne saurait être assimilé à un « communisme » ou à une « production collective » utopique. Il s’agissait d’un amour enraciné dans l’Esprit, appliqué aux conditions concrètes de la vie. David Jang souligne l’importance pour l’Église contemporaine de retrouver ce principe de « partage centré sur les besoins » présent dans la communauté primitive.
Cependant, même dans cette Église primitive si pure et si belle, un sombre événement survient : l’histoire d’Ananias et de Saphira. Certains affirment qu’il est difficile de comprendre cet épisode dramatique du chapitre 5 sans tenir compte du contexte de « partage des biens » présenté dans Actes 4:32-37. David Jang relève ici la gravité du fait de « traiter avec légèreté ou de tromper ce qui a été consacré à Dieu ». À partir du moment où l’on s’engage à offrir quelque chose à Dieu, ce bien ne nous appartient plus. Si l’on se ravise et tente de dissimuler ou de détourner une part de ce qui était consacré, on commet un péché de « tromperie » envers le Saint-Esprit.
3. L’histoire d’Ananias et de Saphira, et le message du pasteur David Jang
Dans Actes 5:1 et les versets qui suivent, l’affaire d’Ananias et de Saphira constitue l’exemple le plus sévère de discipline (ou de jugement) dans l’Église primitive. Ces deux personnes avaient décidé de vendre leurs biens pour les consacrer à la communauté, mais ils n’en versèrent pas la totalité, en gardant une partie pour eux. Le péché ne résidait pas tant dans la somme retenue que dans la « fraude » elle-même. Une fois le bien voué à Dieu, il ne leur appartenait plus, mais en tentant de le dissimuler, ils cherchaient à tromper Dieu.
David Jang souligne à ce propos que « l’homme rempli de l’Esprit discerne la tromperie ». Dès qu’Ananias se présente devant Pierre, ce dernier lui reproche : « Pourquoi Satan a-t-il rempli ton cœur, au point que tu mentes au Saint-Esprit ?… » Pour l’homme, cela peut sembler un péché relativement mineur, mais il s’agit d’une atteinte fondamentale à la pureté, à la transparence et à la confiance absolue dans le règne de Dieu qui caractérisait la vie communautaire de l’Église primitive. C’est pourquoi Ananias et Saphira tombent morts l’un après l’autre devant Pierre. Ce drame prouve le sérieux avec lequel l’Église primitive affrontait cette menace. Alors que la communauté était en pleine croissance, l’introduction du mensonge et de la fraude aurait pu faire s’effondrer le tout.
Il est vrai que, de notre point de vue moderne, la sévérité de ce châtiment peut paraître choquante : « Pourquoi mourir pour avoir donné moins d’argent ? » David Jang explique cependant qu’en raison de la manifestation puissante et concrète de la souveraineté de Dieu au sein de l’Église primitive, le péché au sein de la communauté n’était pas considéré selon la perspective humaine. À l’époque, la majesté divine et la puissance de la résurrection du Seigneur se manifestaient de façon si évidente qu’une tromperie envers la souveraineté de Dieu équivalait à « pécher contre le Saint-Esprit ». De plus, les croyants reprenaient le principe de l’« herem » (chose vouée à Dieu) de l’Ancien Testament : une offrande consacrée à Dieu ne pouvait plus être touchée par l’homme. En cherchant à s’approprier une part de ce qui appartenait à Dieu, Ananias et Saphira ont commis un péché qui rappelle celui d’Acan dans l’Ancien Testament.
Dans l’histoire d’Acan (livre de Josué), après une victoire militaire, Dieu avait ordonné que tout le butin soit voué à l’Éternel. Mais Acan le vola et le cacha. En conséquence, l’ensemble du peuple subit une défaite et fit face à un grave danger. Ce n’est qu’une fois Acan mis à mort par lapidation que la bénédiction divine revint. Les Écritures traitent très sérieusement toute appropriation de ce qui appartient à Dieu, car un tel acte revient à nier que tout, y compris la vie et les biens, appartient au Seigneur. Selon David Jang, l’Église primitive hérita de ce « principe de sainteté ». Ainsi, le jugement mentionné dans Actes 5 peut nous sembler excessif aujourd’hui, mais dans cette Église où la souveraineté de Dieu se manifestait pleinement, il ne pouvait en être autrement.
Cette interprétation nous ramène à la question fondamentale : qu’est-ce que l’Église ? S’agit-il simplement d’un groupe religieux ou d’un rassemblement humain, ou bien est-ce réellement le lieu où le gouvernement de Dieu s’exerce ? Si l’Église est sous le règne de Dieu, elle ne peut tolérer le péché, même le plus petit. Bien sûr, nous restons tous pécheurs et nous ne pouvons atteindre la perfection. Toutefois, il est indispensable de reconnaître nos fautes comme telles et de nous en détourner. David Jang souligne que l’Église moderne doit méditer avec sérieux l’histoire d’Ananias et de Saphira. Pourquoi donnons-nous nos offrandes ? Pourquoi servons-nous ? Pourquoi vivons-nous en rendant un culte de tout notre être ? Sommes-nous vraiment sincères dans notre démarche envers Dieu ou abritons-nous derrière une façade une forme subtile d’égoïsme et de duplicité ?
En définitive, la mort d’Ananias et de Saphira a de nouveau suscité une crainte respectueuse au sein de l’Église primitive. « Toute l’Église fut saisie d’une grande crainte, et tous ceux qui apprirent ces choses aussi » (Actes 5:11). Cette crainte n’était pas une terreur angoissante qui paralysait la communauté, mais une révérence authentique envers Dieu. L’événement produisit une prise de conscience : « Pour que l’Église vive, nous devons être purs ». Le message selon lequel l’Église doit rester intègre et sincère est d’une actualité brûlante pour l’Église d’aujourd’hui.
David Jang affirme que « le plus grand miracle qui puisse se produire dans notre vie n’est pas un prodige spectaculaire, mais la transformation de notre convoitise secrète par la puissance du Saint-Esprit, et l’adoption d’une attitude de soumission totale au règne de Dieu ». La dimension financière révèle souvent l’état réel de notre foi : au-delà de notre zèle apparent pour les activités d’église, la question est de savoir si nous sommes capables de nous abandonner réellement à Dieu, au point de ne plus être dominés par nos possessions, et de bénéficier de la liberté de les partager avec joie.
David Jang interpelle ainsi les Églises contemporaines : « Face à l’histoire d’Ananias et de Saphira, y a-t-il en nous quelque chose que nous dissimulons à Dieu ? » Nous pouvons très bien accomplir en apparence de bonnes œuvres, tant à l’intérieur qu’à l’extérieur de l’Église, tout en gardant en nous un esprit de fraude envers le Saint-Esprit. Par exemple, lorsque nous servons ou faisons une offrande, convoitons-nous l’approbation et les éloges des autres ? Disons-nous sincèrement que nous remettons tout à Dieu alors que nous en gardons secrètement une partie pour nous ? Si nous fermons les yeux sur ces questions tout en nous enorgueillissant de notre pratique religieuse ou de nos offrandes supérieures à celles des autres, nous risquons de reproduire le drame d’Ananias et de Saphira.
Les responsables de l’Église d’aujourd’hui doivent également s’examiner et guider correctement les croyants. Si la gestion des biens de l’Église manque de transparence, si l’on ignore l’usage des offrandes, ou si un dirigeant instrumentalise l’Église à des fins de satisfaction personnelle, on s’écarte radicalement de la pureté de l’Église primitive. David Jang en appelle à ce que les responsables soient les premiers à emboîter le pas de Barnabas, qui s’est dépouillé de ses biens et est devenu un véritable « fils de la consolation ». Autrement dit, le dirigeant doit d’abord s’offrir lui-même avant d’exiger un quelconque sacrifice des fidèles. Le cœur de l’esprit de l’Église primitive n’était pas de savoir qui donnait le plus ou qui méritait plus de reconnaissance, mais bien : « Comment répondre aux besoins de chacun et nous soutenir mutuellement ? ».
Ainsi, même si l’histoire d’Ananias et de Saphira projette une ombre au moment le plus rayonnant de la vie de l’Église primitive, elle révèle en réalité la sainteté et la pureté de cette communauté. Quand l’Église est sous l’autorité du Saint-Esprit, nul mensonge ne peut y être toléré, et il s’ensuit un combat pour préserver la vérité et la sainteté. David Jang rappelle la gravité avec laquelle l’Église contemporaine devrait accueillir ce message.
De nos jours, de nombreux problèmes surgissent sans cesse au sein de l’Église : malversations financières, luttes de pouvoir, conflits entre croyants, etc., exposant l’institution ecclésiale à la critique et au discrédit de la société. Ce que nous pouvons retenir de l’Église primitive, c’est la « transformation de notre regard sur la propriété » ainsi que « l’exigence d’honnêteté et de transparence ». Il ne suffit pas d’imposer un règlement ou de mettre en place une structure ; il faut avant tout que le Saint-Esprit vienne opérer une conversion intérieure en profondeur. Selon David Jang, « lorsque le Saint-Esprit descend, le cœur de l’homme change radicalement, et l’Église cesse d’être régie par l’esprit égoïste pour se mettre au service les uns des autres ». Sans cette transformation, l’Église ne peut retrouver sa véritable identité.
À travers tous les âges, chaque fois que l’Église s’est placée sous la souveraineté de Dieu, plusieurs caractéristiques se sont manifestées. Les croyants étaient unis d’un même cœur et d’une même âme, dans l’amour, le partage, et la mise en commun de leurs biens. Bien que la convoitise humaine soit tenace, le Saint-Esprit procure la force de la dépasser et de se mettre humblement au service d’autrui. L’Église devient alors non plus un simple lieu de culte ou d’activités religieuses, mais un espace où le Royaume de Dieu se déploie réellement.
David Jang souligne finalement que la « foi en la résurrection », la « plénitude de l’Esprit » et le « dépouillement de la propriété et le partage » restent tout autant requis aujourd’hui qu’à l’époque de l’Église primitive. Nous sommes appelés à saisir cette « espérance de la résurrection », déjà active dans l’ère du Saint-Esprit, et à reconnaître que tout, jusqu’à notre propre vie, provient de Dieu et Lui appartient. C’est dans cette perspective que nous pouvons consacrer notre argent, notre temps, nos talents et notre santé à la gloire de Dieu. Lorsque l’Église, renouant avec la « sincérité et la vérité », sert Dieu dans la crainte et le respect, elle peut de nouveau expérimenter la puissance et les miracles décrits dans les Actes des Apôtres. Tel est l’appel lancé par le pasteur David Jang. Selon lui, la tâche la plus urgente et la plus essentielle de l’Église contemporaine est de restaurer ce visage authentique de la communauté croyante.
Finalement, dans l’Église primitive, les miracles et les prodiges ne se réduisaient pas à des phénomènes extérieurs. Ils étaient surtout la preuve que les cœurs et les vies étaient profondément renouvelés. Et le plus grand « signe », c’est qu’en découvrant la foi en Christ ressuscité et en étant saisis par le Saint-Esprit, les croyants formaient une communauté unie dans la charité, où ils mettaient en commun leurs biens. Nous pouvons, nous aussi, édifier l’Église dans la joie et la liberté de « déposer » nos possessions, si nous aspirons sincèrement à l’action puissante du Saint-Esprit, si nous placons la foi en la résurrection au centre, et si nous nous prosternons humblement sous la souveraineté de Dieu. Le pasteur David Jang nous rappelle sans cesse que le message fondamental de l’Église primitive n’est pas un vestige historique ni un idéal inaccessible, mais une réalité concrète et une mission qui nous sont confiées aujourd’hui. Puisque Dieu agit encore maintenant par le biais de l’Église, il nous appartient d’y répondre avec sincérité et d’entrer dans ce projet divin.
Que nous retenions bien cette leçon : lorsqu’elle fut transformée par l’action du Saint-Esprit, l’Église primitive manifesta cette transformation avant tout par le « dépouillement de la propriété et le partage », s’employant à répondre aux besoins de chacun. Animée d’une sainte crainte envers la souveraineté de Dieu, elle vivait pleinement la foi en la résurrection, repoussant même la peur de la mort. Dès lors, toute préoccupation de s’assurer un avenir matériel s’évanouissait, permettant un partage libre et généreux. L’épisode d’Ananias et de Saphira démontre cependant qu’aucune communauté n’est à l’abri de la tentation. Mais l’Église primitive a fait face résolument au péché, et ce faisant, elle a conservé intacte sa pureté.
David Jang appelle l’Église d’aujourd’hui à méditer profondément ce message. Les problèmes de finances, le manque de probité des dirigeants, les rivalités entre fidèles, résultent souvent de l’avarice et de la cupidité humaines. Si nous sommes remplis du Saint-Esprit, nous pourrons, comme l’Église primitive, prendre pleinement conscience de la souveraineté de Dieu et vivre dans la crainte sacrée et la joie de l’espérance en la résurrection. Alors, nous serons capables de nous aimer, de partager, et de convaincre le monde : « Voilà une communauté où Dieu agit vraiment ! » Le pasteur David Jang souligne qu’il est urgent et indispensable pour l’Église d’aujourd’hui de recouvrer cette essence de la foi, puisant dans l’exemple de l’Église primitive et prenant l’histoire d’Ananias et de Saphira comme un sérieux avertissement. L’Église révèle alors la puissance de l’Évangile au monde, dans la mesure où, humble et fidèle, elle se laisse conduire par le Saint-Esprit.